『다시 알프스에』 비 내리는 취리히
알프스를 다시 찾아가게 될 줄은 몰랐다.
첫 번째 여행이 『알프스의 노래』라는 한 권의 책이 된 뒤,
나는 다시 언니와 함께 스위스와 이탈리아로 향했다.
두 번째 알프스 여행은 두바이의 긴 환승과 비 내리는 취리히에서 시작되었다.
첫 번째 스위스 여행을 다녀온 뒤 나는 그 여행의 기억을 오래 품고 살았다. 산과 호수, 기차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던 작은 마을들, 어느 아침 창문을 열었을 때 눈앞에 펼쳐졌던 알프스의 풍경까지.
그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한 권의 책이 되었고, 나는 그 책에 『알프스의 노래』라는 이름을 붙였다.
책을 펴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었고, 몇 년 동안 하늘길이 막혔다.
온 지구촌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문을 걸어 잠갔다.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이 팬데믹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진단키트가 부족해 아우성이었고 백신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우리 시대에 이런 시간을 통과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살아내야 했던 현실이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일도 쉽게 꿈꿀 수 없을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각 나라는 조금씩 닫아두었던 문을 열기 시작했고, 관광객도 다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바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라마다 방역 증명서를 요구하기도 했고, 해외에서 코로나에 감염되면 격리를 거쳐 다시 검사를 받은 뒤에야 귀국할 수 있었던 시기도 있었다.
그래서 해외여행은 여전히 마음속에만 두고 있었다.
하지만 알프스는 잊히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풍경들이 있었다. 다시 한번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도 조금씩 커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팬데믹이 끝나면서 아무런 조건 없이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여행 상품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마침내 두 번째 알프스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번에도 언니와 함께였다.
지난 여행이 스위스를 중심으로 한 여행이었다면, 이번에는 스위스에서 시작해 이탈리아까지 살짝 품어보는 여정이었다.
같은 나라를 다시 찾아간다고 해서 같은 여행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달랐고 시간도 흘렀으며, 무엇보다 팬데믹이라는 긴 시간을 통과한 우리의 마음이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두 번째 알프스 여행이 시작되었다.
두바이를 거쳐 다시 알프스로
이번에는 스위스까지 직항으로 가지 않았다.
아랍에미리트 항공편을 이용해 두바이를 거쳐 취리히로 들어가는 일정이었다.
처음에는 두바이를 경유한다는 것도 여행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유럽으로 곧장 날아가는 것과 달리 중동의 거대한 공항을 거쳐 가는 경험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 여정은 생각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두바이에 도착했을 때 이미 긴 비행으로 몸은 지쳐 있었다. 그런데 다시 취리히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다섯 시간이라는 긴 환승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의 두바이 공항은 거대한 공항의 속내를 아직 다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일부 문을 연 상가와 여행객들이 머무는 대기실의 어수선한 풍경만 눈에 들어왔다.
공항 안을 걷다가 의자에 앉고, 다시 일어나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우리가 타고 갈 취리히행 비행편은 좀처럼 화면에 나타나지 않았다.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말할 힘조차 없을 만큼 피곤해졌다. 결국 우리는 대기실 의자에 기대어 교대로 쪽잠을 청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목적지만 생각한다.
스위스에 도착하면 무엇을 볼까.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까.
알프스는 예전 그대로일까.
하지만 정작 길을 떠나보면 그곳에 닿기까지의 시간도 모두 여행이 된다.
두바이라는 도시는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한 채 우리는 공항에서 다섯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마침내 취리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가 두바이를 떠나 유럽을 향해 날기 시작하자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제 정말 스위스로 간다.
그리고 다시 알프스로 간다.
창밖을 바라보며 오래전 첫 여행을 잠시 떠올렸다.
그때의 알프스와 이번에 만날 알프스는 얼마나 다를까.
비 내리는 취리히에서 시작된 두 번째 여행
긴 여정 끝에 취리히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우리를 맞아준 것은 눈부신 스위스의 햇살이 아니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긴 비행과 환승으로 몸은 무거웠고, 공항에서 짐을 찾아 밖으로 나오는 순간까지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았다.
하필 여행 첫날부터 비라니.
조금 야속한 마음도 들었다.
나는 어쩌면 마음속으로 스위스에서 맞을 첫 장면을 미리 그려놓았는지도 모른다.
맑은 하늘과 깨끗한 거리, 멀리 보이는 산, 그리고 그 풍경을 바라보며 두 번째 여행의 시작을 기뻐하는 모습을.
그러나 여행은 언제나 내가 그려놓은 그림대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비에 젖은 취리히는 오히려 차분했다.
공항에서 도시로 들어갈수록 흐린 하늘 아래 오래된 건물과 젖은 거리의 풍경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스위스에 왔을 때처럼 모든 것이 낯설지는 않았다.
오래전에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처럼,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다.
언니와 함께 비에 젖은 취리히를 걷다
언니와 함께 취리히 시내를 걸었다.
비 때문에 여행의 시작은 조금 힘들었지만 막상 도시 안으로 들어가자 마음이 달라졌다.
젖은 거리도, 흐린 하늘도, 취리히라는 도시가 보여주는 하나의 얼굴이었다.
한 번 다녀간 도시를 다시 찾는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낯선 곳을 찾아왔을 때의 긴장 대신 오래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듯한 반가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언니가 있었다.
첫 번째 알프스 여행 때처럼 이번 여행의 풍경 속에도 언니가 함께 있었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비가 오는 만큼 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여행 첫날부터 욕심을 내어 많은 곳을 보려고 애쓰고 싶지도 않았다.
우산 아래로 보이는 취리히의 거리는 차분했다. 비에 젖은 건물의 벽은 색이 조금 더 짙어졌고, 거리의 돌바닥에는 지나가는 사람들과 건물의 불빛이 희미하게 비쳤다.
나는 그런 취리히가 좋았다.
사진 속에서 보았던 맑고 아름다운 스위스와는 조금 달랐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여행이라는 것이 꼭 아름다운 날씨와 완벽한 풍경 속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비가 오기도 하고, 길을 헤매기도 하고, 기다리다 지치기도 한다.
그러다 우연히 마음에 드는 골목 하나를 만나기도 하고, 따뜻한 차 한 잔에 다시 기운을 얻기도 한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나중에는 여행의 이야기가 된다.
첫 번째 알프스 여행에서는 새로운 풍경을 하나라도 더 보고 싶어 늘 다음 장소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두 번째 여행에서는 조금 달랐다.
나는 이제 여행지에서 무엇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보다 그곳에서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리마트강을 따라 만난 취리히
도시를 걷다 보니 취리히를 가로지르는 리마트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오래된 건물들이 이어지고, 다리 위를 사람들이 오갔다.
취리히는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도시라기보다 천천히 걸을수록 조금씩 마음을 열어 보이는 도시처럼 느껴졌다.
강과 오래된 건물, 교회의 첨탑과 좁은 골목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풍경 끝에는 취리히 호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물과 도시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다시 스위스에 왔다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났다.
첫 여행에서 만났던 스위스의 호수들이 떠올랐다.
루체른의 호수도 생각났고, 그 너머에서 바라보았던 알프스도 떠올랐다.
나는 아직 알프스 깊숙이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오래된 기억 속의 산들을 만나고 있었다.
어쩌면 두 번째 여행은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오래된 기억과 지금의 나를 다시 만나게 하는 여행인지도 모른다.
여행은 함께 바라보는 풍경이었다
혼자였다면 그냥 지나쳤을 풍경도 언니와 함께라서 한 번 더 바라보게 되었다.
“저기 참 예쁘다.”
한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다른 한 사람도 걸음을 멈추었다.
여행에서 함께 걷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같은 풍경을 두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었다.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좋았다.
취리히의 거리를 걷고, 비를 피하고, 강을 바라보고, 처음 만나는 골목으로 들어가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했다.
첫날부터 날씨가 좋았더라면 우리는 더 많은 곳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비가 내렸기 때문에 오히려 취리히를 천천히 걸었던 것 같다.
두바이 공항에서 기다리며 지쳤던 시간도, 긴 비행도, 취리히 공항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피곤함도 조금씩 멀어졌다.
그 자리에 새로운 설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알프스를 만나러 가는 길.
그 두 번째 여행의 첫 도시는 비 내리는 취리히였다.
취리히, 알프스로 향하는 첫 도시
스위스 여행에서 취리히는 공항이나 기차역을 이용하기 위해 잠시 거쳐 가는 도시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조금 달랐다.
비에 젖은 거리를 천천히 걸어보니 오래된 구시가지와 리마트강, 교회의 첨탑과 취리히 호수가 가까운 곳에 이어져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여러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취리히는 어떤 도시일까
취리히는 스위스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유럽의 중요한 금융·경제 중심지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직접 걸어보면 거대한 금융도시라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만난다.
리마트강이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고 강은 취리히 호수와 이어진다. 강 양쪽으로는 오래된 구시가지가 자리하고 있어 현대적인 도시와 오랜 역사의 흔적을 함께 만날 수 있다.
취리히 중앙역에서 호수 방향으로 이어지는 반호프슈트라세는 취리히를 대표하는 거리 가운데 하나다. 약 1.4km에 이르는 거리를 따라 걸으면 도심을 지나 자연스럽게 호수 가까이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내게 더 오래 남은 것은 화려한 상점보다 큰길에서 조금 벗어났을 때 만나는 골목과 오래된 건물들이었다.
여행지의 유명한 장소도 좋지만 한 도시의 진짜 표정은 때로 이름 없는 골목에서 만날 수 있다.
리마트강과 구시가지에서 만나는 명소
그로스뮌스터 Grossmünster
리마트강 주변을 걷다 보면 두 개의 탑이 인상적인 그로스뮌스터를 만나게 된다. 취리히를 대표하는 교회이자 도시의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다.
종교개혁가 울리히 츠빙글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탑에 오르면 취리히 구시가지와 강, 호수 방향의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프라우뮌스터 Fraumünster
강 건너편에는 프라우뮌스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는 마르크 샤갈이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다. 색색의 유리를 통과한 빛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 때문에 미술과 건축에 관심이 있는 여행자에게도 의미 있는 장소다.
린덴호프 Lindenhof
조금 높은 곳에 자리한 린덴호프는 취리히를 천천히 바라보기 좋은 곳이다.
리마트강과 구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어 복잡한 관광지를 잠시 벗어나 쉬어가기에도 좋다.
도시 끝에서 만나는 취리히 호수
취리히를 걷는 여행의 끝에는 호수가 있다.
건물과 상점이 이어지던 도심을 지나 넓은 물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스위스에 왔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난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호수 너머로 산의 풍경까지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첫날에는 비가 내렸다.
그래서 오히려 좋았는지도 모른다.
잔뜩 흐린 하늘 아래 놓인 호수는 화려하지 않았고, 물빛도 짙고 차분했다.
그 풍경 앞에서 언니와 함께 서 있으니 긴 여정을 지나 마침내 스위스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첫 번째 여행에서는 아름다운 알프스를 만나기 위해 서둘렀다면, 두 번째 여행에서는 그곳으로 가는 길까지 오래 바라보고 싶었다.
취리히 여행을 위한 작은 TIP
- 공항에서 시내로: 취리히 공항에서 취리히 중앙역까지 기차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 도보 여행: 중앙역에서 반호프슈트라세, 구시가지, 리마트강과 호수까지 연결해 걸으면 취리히 중심부를 둘러보기 좋다.
- 비 오는 날: 작은 우산이나 가벼운 방수 재킷을 준비하면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 도움이 된다.
- 여행 시간: 취리히를 환승지로만 지나가기보다 반나절이나 하루 정도 여유를 두면 구시가지와 호수를 천천히 즐길 수 있다.
- 교회 방문: 내부 관람이나 탑 입장 시간과 요금은 변경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에 공식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작가 노트
취리히에서의 첫날이 저물어 갔다.
두바이에서 긴 시간을 기다리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비 내리는 취리히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번 여행의 시작이 참 힘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니와 도시를 걷고, 리마트강과 오래된 골목을 지나 취리히의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그 피곤함은 어느새 여행의 한 장면이 되어 있었다.
첫 번째 알프스 여행이 끝난 뒤 나는 그 시간을 『알프스의 노래』라는 책에 담았다.
그리고 다시 스위스에 온 지금, 나는 예전과는 다른 여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같은 나라를 여행해도 시간은 달라지고, 그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도 달라진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경만 기록하고 싶지는 않았다.
언니와 함께 걸었던 길, 예상하지 못했던 비, 기다림과 피곤함, 그리고 그 사이에서 만난 작은 기쁨까지 모두 남겨두고 싶었다.
취리히는 우리의 목적지가 아니라 다시 알프스로 향하는 첫 문이었다.
첫 번째 알프스에서는 산의 노래를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곳으로 가는 길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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