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에서 바라본 마지막 유럽

하이델베르크에서 바라본 마지막 유럽


잠 못 이룬 마지막 밤

밤새 뒤척이며 어둠 속에서 거의 뜬 눈으로 잠 못 이룬 나는 새벽이 되어서야 잠깐 잠이 들었다. 그 사이 언니가 일어나서 씻고 짐을 챙기는 소리에 눈을 뜨니 새벽 5시, 나도 얼른 일어나 씻고 짐을 챙겼다.

아무래도 날씨가 심상치가 않다. 대한항공 홈페이지엔 오늘 한국으로 가는 비행편이 결항이 될지도 모른다고 공지가 올라오고 유럽의 거의 모든 항공사들이 강한 비바람으로 무더기 결항사태가 예상된다고 했다.

조식을 먹으려고 레스토랑에 내려가 창가에 앉았는데 바람소리가 요란했다. 비바람과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조식을 먹고 호텔방에 올라와 짐을 챙긴 후 버스를 타러 나가는데 비바람이 너무 거세어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바람에 떠밀리다시피 걸어가 겨우 버스에 올라탔다.


불안했던 출발

폴란드 기사님은 폴란드엔 악천후로 공항이 폐쇄되었고 유럽 많은 나라의 공항도 무더기 결항이 속출한다며 자기도 오늘 폴란드로 일곱 시간 차를 몰고 돌아가야 하는데 날씨 때문에 걱정이라고 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면서 여행 잘하고 한국 못 가는 거 아닌지 서서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여행의 마지막 일정까지 무사히 지켜 주시고 축복하시길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다른 일행들도 한 팀씩 올라타면서 걱정스러운 얘기들을 많이 했다. 제일 중요한 건 오늘 대한항공이 뜰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아직 결항에 대한 정식 문자가 없었기에 일단 우리는 날씨가 좋아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마지막 여정인 하이델베르크로 향했다.


겨울 유럽의 진짜 날씨

일주일간 너무 좋은 날씨에 여행을 다녀 이게 유럽 날씨라고 착각한 우리에게 가이드는 오늘 이 날씨가 겨울 유럽의 일반적인 날씨라며 너무 놀라지 말라며 삼대가 덕을 쌓은 팀이니 끝까지 날씨가 우리 편인지 한번 보자며 농담을 했다.

버스 안에서 바라본 독일의 시가지는 비바람 때문에 왠지 스산하고 황량했다.

바람이 너무 불어 그 큰 버스가 흔들려 기사님도 최대한 조심해서 운전하길 한 시간, 슈투트가르트를 벗어난 버스는 어느새 해가 비치고 바람이 멈춘 맑은 겨울 날씨인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비가 그치니 독일의 풍경도 아름답게 바뀌고 있었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하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을 때는 약간 바람이 불긴 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이 정도 날씨면 비행기가 결항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안심하며 하이델베르크 고성투어를 시작했다.

가이드는 정말 이 팀은 끝까지 날씨가 도와준다며 우리를 복이 많은 여행팀이라고 했다.

하이델베르크는 깨끗하고 밝은 도시였다.

옛날 고성이 있는 언덕 위에 올라가 시내 전망을 보며 사진을 찍었다.

스위스에서 알프스를 보고 온지라 가슴은 별로 콩닥거리지 않았지만 독일의 대학도시인 하이델베르크도 유럽의 다른 도시들처럼 강이 흐르는 양옆으로 마을들이 형성되어 나란히 마주보며 그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었다.

특이하게 이곳도 프라하처럼 지붕이 다 빨간 지붕이어서 꼭 프라하에 와 있는 착각도 순간 들었다.

독일의 검은색 목조건물과 달리 이곳의 건물들은 다 빨간 지붕이어서 도시 전체가 밝고 화사하게 보였다.

바람이 좀 불어 춥긴 했지만 옛 고성 위에서 바라보는 하이델베르크 시가지는 아름다웠다.

아직 겨울이라 황량한 겨울 풍경에도 빨간 지붕의 도시는 전체적으로 밝고 정겨웠다.


하이델베르크의 마지막 산책

고성을 내려와 시내로 가서 강물 위에 걸쳐 있는 다리를 걸을 때는 바람이 많이 불어 입고 간 패딩에 달린 모자를 고등학생처럼 푹 눌러쓰고 다녔다.

짧은 하이델베르크 시내투어를 마친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유럽에서의 마지막 식사다.


유럽에서의 마지막 식사

우린 이 식당에서 처음으로 여행사의 다른 패키지 팀과 마주쳤다. 우리가 먼저 식당에 도착해서 앉아 있는데 갑자기 시끌시끌 동양인이 들어오기에 처음엔 중국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국의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단체로 연수차 독일여행을 온 것이었다.

이 팀은 들어올 때부터 시끄럽더니 식사하는 내내 시끄러웠다. 우리 팀이 얼마나 조용한 분들이었는지 새삼 비교되는 장면이었다.

이날 우리 메뉴는 생선과 크로켓이 나왔는데 이 팀은 함박스테이크와 감자튀김이었다. 그런데 생선요리가 너무 우리 입에 맞지 않아 거의 식사를 하지 못했다.

생선을 튀긴 게 아니라 그냥 쪄서 크로켓이랑 주는데 정말 입에 맞지 않았다. 게다가 빵도 딱 숫자에 맞게 나와서 시형인 빵만 먹고 거의 식사를 하지 못했다.

저쪽 팀은 맥주에 뜨거운 불판에 지글거리는 함박스테이크와 감자튀김을 먹는데 많이 비교가 되었다.

조용한 우리 팀과 달리 그 팀은 너무 시끄러워서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우리 팀의 일행들이 음식 가격표를 보고 있었다. 사실 대부분 식사를 거의 못한지라 분명 한두 사람은 볼멘소리가 나오겠구나 생각했는데 다들 아무 말이 없이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새삼 우리 팀 분들이 얼마나 조용한 분들인지 느끼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쇼핑 그리고 감사

식사 때 얼굴을 비추지도 않던 가이드는 버스에 타고야 얼굴을 나타내서 식사 맛있게 했냐며 생선 요리가 우리 입에는 좀 안 맞았을 거라며 독일 요리가 그러려니 생각하라고 했다.

그리고 공항으로 가기 전 마지막 쇼핑센터에 갈 텐데 엄청 긴 시간을 쇼핑할 물건에 대한 안내의 말을 했다. 아마 이번 여행 중 가장 많은 말을 한 것 같았다.

물건에 대한 홍보를 하는데 얼마나 유창하게 말하는지 처음으로 가이드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나 싶어 혼자 속으로 웃었다.

공항으로 가는 한 시간 내내 쇼핑할 물건을 홍보해서 머리가 조금 아플 즈음 다행히 차는 공항 면세점에 도착했다.

독일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그렇게 쇼핑센터에서 끝났다.

언니와 나는 작은 독일 칼과 볼펜, 탈취 비누를 샀다. 아마 우리가 가장 적게 산 것 같았다.

애초에 여행이 목적이고 가지고 간 돈도 거의 없는지라 우린 각자 산 물건 값이 5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가이드가 목이 아프도록 홍보를 했는지라 너무 적게 사서 가이드에겐 조금 미안했지만 우린 꼭 필요한 물건만 샀다.


폴란드 기사님과의 작별

쇼핑을 마치고 나온 우리는 드디어 폴란드 기사님과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가이드가 가지고 온 라면 같은 게 남아 있으면 기사님께 드리면 좋아한다고 얘기해서 나는 어젯밤 호텔에서 챙겨 놓은 선물 가방에 한국에서 가지고 간 장갑과 마스크, 라면 등과 스위스에서 산 초콜릿과 오렌지 주스 그리고 작은 선물을 미리 챙겨 놓았다.

여행 내내 밝고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 주었고 정말 운전을 잘해 주셔서 편하게 여행을 다녀 꼭 인사를 하고 싶었다.

버스에서 캐리어를 다 내려 주고 출발하려는 기사님께 맨 마지막에 서 있다가 짧게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선물가방을 전해 드렸다.

제법 묵직한 선물 가방을 받으며 기사 아저씨는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내가 편안한 여행을 하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다시 말씀드렸더니 정말 고맙다며 환하게 웃으셨다.

기사 아저씨의 밝은 웃음을 보며 가벼운 마음으로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비가 조금씩 내리기는 했지만 바람은 많이 불지 않아 폴란드까지 무사히 잘 가시길 바란다.

프랑크프르트공항은 검소한 독일인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이제 수속하고 들어가면 스위스 일주 여행도 막을 내린다.

대한항공 수속장소에 가니 사람이 굉장히 많다. 아마 거의 만석인 것 같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한국인이 갑자기 나타나는지 올 때처럼 중간 자리가 비어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들 많이 피곤하고 힘든 표정들이다. 아쉬움과 섭섭함이 교차한다.

다 같이 앉아 차라도 한잔 마시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은데 결국 하지 못했다.

앉을 자리도 별로 없어 서서 한 시간 가까이 대기하다가 수속을 마치고 각자 안으로 들어가서 헤어졌다.

아… 올 때처럼 갈 때는 결국 다 각자 돌아가는구나….

짧았지만 한 가족이 되어 같이 여행한 모든 분들께 감사와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안녕 스위스, 안녕 알프스.



✍️ 작가 노트


 여행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길

여행의 마지막 날은 늘 특별합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설렘보다 함께했던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하이델베르크의 붉은 지붕과 고성,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분주한 풍경도 시간이 지나면 흐려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행 내내 안전하게 운전해 주신 폴란드 기사님의 환한 미소와, 짧은 시간이지만 한 가족처럼 함께했던 여행 일행들의 따뜻한 모습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바라본 마지막 유럽

하이델베르크는 이번 여행에서 만난 마지막 도시였습니다.

붉은 지붕이 이어지는 오래된 도시와 언덕 위의 고성을 바라보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이제 정말 여행이 끝나 간다는 아쉬움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여행을 시작할 때는 하루가 길었습니다. 내일은 어디로 갈지,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지 궁금했고 아직 남아 있는 일정이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설렜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이 되니 시간은 유난히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골목 하나를 걸어도 조금 더 천천히 걷고 싶었고, 오래된 건물을 바라보면서도 한 번 더 뒤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풍경이면서 동시에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풍경이라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는 길

하이델베르크를 떠난 버스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향했습니다.

처음 유럽에 도착했던 날에도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지나왔습니다.

그날은 긴 비행 끝에 만난 차가운 비와 낯선 공기, 앞으로 시작될 여행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같은 프랑크푸르트를 향하면서 우리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버스에 앉아 있었습니다.

올 때는 앞으로 펼쳐질 여행을 생각했고, 돌아갈 때는 지나온 여행을 생각했습니다.

같은 길도 떠날 때와 돌아올 때는 이렇게 다르게 보였습니다.

창밖으로 독일의 풍경이 흘러갔지만 마음은 자꾸 그동안 지나온 곳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스위스의 산과 호수, 작은 마을과 눈길,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웃었던 사람들이 차례로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길을 지켜 준 사람

이번 여행에서 오래 기억하게 될 사람 가운데 한 분은 폴란드 기사님입니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참 많은 길을 달렸습니다.

평탄한 고속도로도 있었지만 좁고 가파른 산길도 있었습니다. 특히 몽트뢰에서 테쉬로 향하던 산길에서는 버스 아래로 보이는 아찔한 절벽 때문에 나는 몇 번이나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그때도 기사님은 긴 버스를 침착하게 운전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가는 여행길이었지만 기사님에게는 수많은 사람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길이었을 것입니다.

여행이 무사히 끝나고 나서야 그동안 아무 일 없이 수많은 길을 지나왔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마주한 기사님의 환한 미소가 오래 기억에 남은 것도 아마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말이 많이 통하지 않아도 감사는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정말 수고하셨다는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면서, 여행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관광지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 주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에서 만난 또 하나의 가족

공항이 가까워질수록 함께했던 사람들과도 곧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실감났습니다.

처음 공항에서 만났을 때 우리는 모두 낯선 사람들이었습니다.

서로 이름도 잘 몰랐고,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며칠 동안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식탁에 앉았습니다.

추운 산길을 함께 걸었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 주었으며, 누군가 조금 늦으면 기다려 주었습니다.

마터호른 앞에서는 함께 감탄했고 눈밭에서는 나이를 잊고 웃었습니다.

그렇게 여행이 하루하루 지나면서 낯선 사람들은 어느새 서로를 챙기는 작은 가족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평생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입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여행에서 만나는 인연은 참 신기합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같은 길을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오래 마음에 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이 만나는 프랑크푸르트

마침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처음 이곳에 내렸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거의 열두 시간을 날아와 처음 마주했던 프랑크푸르트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날은 어두웠으며 차가운 공기가 매섭게 느껴졌습니다.

그때의 나는 앞으로 무엇을 만나게 될지 알지 못했습니다.

알프스가 얼마나 아름다울지도, 마터호른 앞에서 어떤 마음이 들지도, 여행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오랫동안 꿈꾸었던 알프스를 만나러 간다는 설렘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날이 흐른 뒤 다시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돌아왔습니다.

장소는 같았지만 나는 처음 도착했을 때와 조금 달라져 있었습니다.

눈으로 본 풍경이 많아졌고 마음속에 담긴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부터 품고 있었던 꿈 하나를 실제로 만나고 돌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헤어짐이 있어 더 오래 남는 사람들

공항에서는 하나둘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며칠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함께했던 사람들이 이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여행 중에는 내일 아침이면 다시 만날 것을 알았기에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인사도 마지막 날에는 다르게 들립니다.

“안녕히 가세요.”

“건강하세요.”

“언젠가 또 만나요.”

짧은 말 속에 며칠 동안 함께했던 시간이 들어 있었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더 오래 얼굴을 바라보게 됩니다.

어쩌면 여행의 인연이 아름다운 것은 함께하는 시간이 짧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양보하고, 조금 더 기다려 주고, 작은 친절에도 더 많이 고마워하는지도 모릅니다.


알프스의 노래를 마음에 담고

여행을 시작할 때 나는 알프스를 보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 책에서 만났던 하이디의 산을 직접 보고 싶었고, 눈 덮인 마터호른 앞에 서 보고 싶었습니다.

그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는 순간 돌아보니 내가 얻은 것은 아름다운 풍경만이 아니었습니다.

험한 길을 안전하게 달려 준 기사님의 수고가 있었고, 낯선 사람끼리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했던 따뜻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여행은 장소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사람에게로 돌아왔습니다.

하이델베르크의 붉은 지붕도, 마터호른의 눈부신 설산도 언젠가는 기억 속에서 조금씩 흐려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풍경 앞에서 함께 웃었던 사람들의 얼굴과 나를 향해 건네던 작은 친절은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따뜻하게 남을 것 같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여행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알프스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마음에 담고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그리워할 한 곡의 노래처럼, 알프스는 그렇게 내 마음속에 남았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늘 특별합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설렘보다 함께했던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하이델베르크의 붉은 지붕과 고성,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분주한 풍경도 시간이 지나면 흐려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행 내내 안전하게 운전해 주신 폴란드 기사님의 환한 미소와, 짧은 시간이지만 한 가족처럼 함께했던 여행 일행들의 따뜻한 모습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여행은 장소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번 스위스 여행이 다시 한번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행자를 위한 하이델베르크 안내

독일 남서부 네카어강(Neckar) 강변에 자리한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는 오래된 성과 대학, 붉은 지붕의 구시가지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다.

제2차 세계대전의 대규모 파괴를 비교적 피한 덕분에 오래된 도시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으며, 강 건너 언덕에서 바라보면 붉은 지붕의 구시가지와 하이델베르크 성, 네카어강이 하나의 풍경처럼 펼쳐진다.

하이델베르크는 화려하고 거대한 도시라기보다 천천히 걸을수록 아름다움이 보이는 곳이다. 오래된 골목을 걷고, 대학과 교회를 지나고, 네카어강을 건너 언덕에 오르면 독일의 역사와 낭만주의 문학이 함께 떠오른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하이델베르크 성

Heidelberger Schloss · Heidelberg Castle

하이델베르크를 대표하는 장소는 단연 하이델베르크 성이다.

쾨니히스슈툴(Königstuhl) 산자락에 자리한 성은 완벽하게 복원된 궁전이 아니라 여러 시대의 흔적과 파괴된 부분을 그대로 품은 채 남아 있다. 오히려 그 모습 때문에 하이델베르크 특유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더욱 깊어진다.

성의 역사는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여러 차례 증축과 파괴를 겪었다. 특히 17세기 전쟁과 이후의 화재 등을 거치면서 오늘날과 같은 아름다운 폐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괴테를 비롯한 많은 시인과 예술가들이 이곳을 찾았고,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는 하이델베르크 성의 폐허 자체가 예술가들에게 특별한 영감을 주었다.

성의 테라스에서는 붉은 지붕이 이어지는 구시가지와 네카어강, 오래된 다리와 주변의 푸른 언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네카어강 위의 오래된 다리

Alte Brücke · Karl-Theodor-Brücke

하이델베르크의 또 하나의 상징은 구시가지와 네카어강 건너편을 연결하는 알테 브뤼케, 즉 옛 다리다.

현재의 석조 다리는 18세기 후반 선제후 카를 테오도르 시대에 건설되었다. 다리 위에 서면 한쪽으로 하이델베르크 성이 보이고 다른 쪽으로는 네카어강과 푸른 언덕이 이어진다.

구시가지 쪽 다리 입구에 있는 중세풍의 브뤼켄토어(Brückentor)와 함께 바라보면 하이델베르크를 대표하는 한 장면이 완성된다.

낮에도 아름답지만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성과 구시가지의 풍경은 특히 오래 기억에 남는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Universität Heidelberg · Heidelberg University

하이델베르크가 단순히 아름다운 관광도시가 아닌 이유 가운데 하나는 대학이다.

하이델베르크대학교는 1386년에 설립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오랜 세월 동안 학자와 철학자, 작가와 과학자들이 이곳에서 연구하고 공부하며 하이델베르크를 대표적인 대학도시로 만들었다.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대학 건물과 도서관, 학생들이 오가는 골목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수백 년 된 대학과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학생들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모습이 하이델베르크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만든다.


학생감옥에 남아 있는 젊은 날의 흔적

Studentenkarzer · Student Prison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는 조금 특별한 장소가 남아 있다. 바로 학생감옥이다.

과거 대학이 학생들에 대한 자체적인 사법권을 가지고 있던 시절, 경미한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을 일정 기간 가두었던 공간이다.

벽과 천장에는 당시 학생들이 남긴 이름과 그림, 낙서들이 가득하다. 엄숙한 대학의 역사와는 또 다른 젊은 학생들의 장난스럽고 자유로운 흔적을 만날 수 있어 흥미롭다.


괴테도 걸었던 철학자의 길

Philosophenweg · 철학자의 길

네카어강을 건너 언덕으로 올라가면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책길 가운데 하나인 철학자의 길을 만날 수 있다.

오늘날 철학자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곳은 오래전부터 대학 교수와 학자, 시인들이 산책하며 생각을 정리하던 장소로 알려져 왔다.

괴테를 비롯해 하이델베르크를 찾았던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도 이 도시의 풍경에서 영감을 받았다.

길을 따라 걷다 뒤돌아보면 네카어강 너머로 붉은 지붕의 구시가지와 하이델베르크 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책 한 권을 들고 천천히 걷고 싶은 길, 아무 말 없이 도시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고 싶은 길이다.


하이델베르크의 심장, 구시가지

Altstadt Heidelberg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를 동서로 이어주는 중심 거리가 하우프트슈트라세(Hauptstraße)다.

오래된 건물과 상점, 작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이어지고 거리 곳곳에서 학생과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마르크트플라츠(Marktplatz)와 성령교회(Heiliggeistkirche)가 자리한다.

하이델베르크 성을 올려다보며 광장과 골목을 천천히 걷다 보면 이 도시가 왜 오랫동안 여행자와 예술가들에게 사랑받았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맛보는 독일의 한 끼

Zum Roten Ochsen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에 자리한 오래된 학생 주점이자 레스토랑이다.

오랜 세월 동안 대학생과 교수, 여행자들이 찾았던 곳으로 벽에는 사진과 오래된 물건들이 가득해 전통적인 대학도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독일 남서부 지역의 음식과 함께 하이델베르크의 오래된 학생문화를 경험하고 싶다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하다.

주소 : Hauptstraße 217, 69117 Heidelberg, Germany


오래된 하이델베르크에서 커피 한 잔

Café Knösel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카페 겸 제과점이다.

이곳과 관련해 유명한 것이 ‘하이델베르크 학생의 키스(Heidelberger Studentenkuß)’라는 초콜릿이다.

19세기 학생들이 젊은 여성들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도록 초콜릿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오늘날에는 하이델베르크를 대표하는 달콤한 기념품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철학자의 길과 오래된 대학, 성을 둘러본 뒤 따뜻한 커피와 함께 하이델베르크의 낭만적인 이야기를 떠올리며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주소 : Haspelgasse 20, 69117 Heidelberg, Germany


하이델베르크 여행 TIP

하이델베르크를 처음 여행한다면 구시가지와 하이델베르크대학교를 둘러본 뒤 하이델베르크 성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고, 알테 브뤼케를 건너 철학자의 길로 이어가는 동선이 좋다.

철학자의 길은 언덕을 올라야 하는 구간이 있으므로 편안한 신발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길 전체를 걷기보다 전망이 좋은 구간까지만 다녀와도 하이델베르크의 아름다운 풍경을 충분히 만날 수 있다.

하이델베르크 성과 대학 관련 시설은 계절과 행사에 따라 관람시간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운영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하이델베르크에서는 많은 명소를 빠르게 돌아보기보다 네카어강과 오래된 골목을 천천히 걸어보자. 성과 강, 대학과 책, 그리고 젊은 학생들의 일상이 한곳에 어우러지는 모습이야말로 이 도시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인지도 모른다.


『알프스의 노래』는 이 글로 스위스 여행의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여행의 기억은 끝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풍경과 사람들은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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