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가 들려 준 노래

알프스가 들려 준 노래
초등학교 5학년 때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를 읽었다. 원래 책을 워낙 좋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지만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보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삼대가 함께 살았던 그때는 대가족 속에서 하루 한 끼 밥을 챙겨 먹는 것도 전쟁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고모들, 큰아버지네 가족들이 위채에 살고 아래채에 딸부자인 우리 가족과 사랑방엔 외할머니와 막내 외삼촌까지 같이 살았으니 어찌 보면 사 대가 한집에 같이 산 것이다.

오후가 되면 우리 집 마루에선 할머니와 엄마 큰엄마와 고모들이 둘러 앉아 칼국수를 만들기 위해 밀가루를 치대고 방망이로 미는 소리가 요란하곤 했다.

콩가루를 넣어 만든 칼국수는 가마솥에 끓여 우리 식구뿐 아니라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까지 마당에 펴놓은 멍석에 앉아 다 함께 앉아 먹었다.

그 대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우리 집은 내가 보고 싶은 동화책을 때 맞춰 사 줄 수 형편이 아니어서 나는 동네의 언니 집들을 다니며 책을 빌려다 읽었다


백경 언니의 책장

특히 포도밭 집의 백경 언니네는 서울에서 이사 와서 집도 포도원 앞에 예쁘게 신식으로 짓고 부엌에서 수돗물도 나오는 최신식 집이었다.

언니네 집에 한 번 놀러 가서 언니의 방에 있는 세계위인전집을 비롯해 벽면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을 보며 내게 꿈같은 그 방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그 언니의 책장에서 빌려다 본 수많은 책들은 늘 내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다.

책을 빌려 읽을 때마다 혹시 책에 뭐가 묻을까 봐 조심조심하며 본 동화책들….

백경 언니의 엄마는 그 많은 책들을 내가 다 본다고 백경 언니에게 핀잔 반 푸념 반을 하시곤 했다.

우리 집도 대식구에 농사가 많아 학교에 갔다 오면 어린 동생을 봐야 하고 밭에 가서 어른들을 도와 심부름도 해야 해서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처지만은 못 되었다.

틈틈이 언니네에서 책을 보다 다 읽지 못하고 집으로 와야 할 때면 그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언니 집에 놀러 갈 핑계만 찾기도 했다.

내가 너무 책을 좋아하니 어느 날 언니가 내게 한 권의 책을 선물했는데 그 책이 바로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이다.

아버지가 보시던 법률 책과 고모들이 보던 몇 권의 소설 책 그리고 언니가 사 보던 어깨동무라는 월간지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내 책이 생긴 것이다.


내 어린 날의 친구, 하이디

그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를 수십 번을 읽었다.

나중에 하도 읽어 책이 닳아 너덜너덜해지도록 하이디는 내 어린 날의 친구였다.

그 하이디를 얼마나 만나 보고 싶었는지….

알프스의 산봉우리와 알므 할아버지가 살던 오두막….

알프스의 별들이 총총히 보이는 작고 둥근 창이 있는 다락방.

건초더미 위에 담요를 깔고 별을 보며 잠든 하이디를 내려다보고 있는 큰 전나무들….

그 사이로 들려오는 바람소리….

난 날마다 하이디와 함께 알프스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책을 하도 많이 읽어 동생을 업고 재울 때도 내 입에선 하이디의 얘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어릴 때 동생들은 내가 얘기해 주는 하이디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으며 잠들곤 했다.

그렇게 내 어린 날을 함께했던 하이디와 알프스는 어른이 되어서도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내가 얼마나 하이디와 알프스를 좋아했으면 러시아로 유학을 갈 때 같이 갔던 한 교수님은 날 보고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같다고 했다.

내게서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보인다며 어이없는 농담을 했지만 좋아하면 닮아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난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하이디를 사랑하고 있었다.


쉰 살이 넘어 만난 알프스

그 알프스를 쉰 살이 넘어 왔다.

이제 소녀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니고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알프스에 왔어도 이 알프스 앞에서 오늘 나는 여전히 어린 날의 하이디다.

하이디가 살았을 만한 산허리의 소박한 집들….

불에 구운 치즈를 녹여 빵 위에 얹어 막 짜낸 우유와 함께 먹는 소박한 저녁식사를 생각하며 난 어린 날의 하이디가 되어 알프스의 노래를 하고 있다.


다시 오고 싶은 겨울과 봄의 알프스

눈 덮인 알프스… 평생에 여기에 몇 번이나 다시 올 수 있을까?

체르마트에서 일주일만 머물면서 날마다 알프스에 오르고 싶다.

등반열차를 타고 매일 알프스에 올라 중간에 작은 마을들에 내려 그곳 주민들과 얘기도 나누고 싶고 염치없이 그들의 집에 들어가 딱딱한 빵 위에 불에 녹인 치즈 한 덩이를 올린 소박한 식사를 대접받고도 싶다.

겨울의 알프스… 너무나 매혹적이다.

그런데 이 알프스를 봄에 또 오고 싶다.

그때 이 알프스는 어떤 모습일까?

에델바이스가 곳곳에 수줍게 피어 있는, 작은 야생화들 속에 고개 내밀고 있는 에델바이스를 찾으며 이 산을 올라와 보고 싶다.

양치기소년 피터가 불러 주는 요들송을 들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푸르름이 가득한 구릉과 알프스의 봉우리들을 보며 이 대자연 속에서 그분의 섭리를 만나고 싶다.

하이디처럼 예쁜 마음씨를 가지고 알므 할아버지에게도 사랑을 전하고 싶다.

알프스에서 만난 사람들… 척박한 자연 안에서 자연과 함께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알프스를 닮은 하이디와 알므 할아버지를 오늘 여기서 만나고 있다.




작가노트 

어린 시절 읽은 책 한 권은 오래도록 사람의 마음에 남아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합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는 제게 단순한 동화책이 아니라,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견디게 해 준 친구였고 언젠가 꼭 만나고 싶은 세계였습니다.

쉰 살이 넘어 비로소 알프스에 섰을 때, 저는 더 이상 어린 소녀가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하이디와 함께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오래 품어 온 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우리를 그 자리로 데려간다는 것을 알프스에서 다시 느꼈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날에 찾아온 하이디

어린 시절의 나는 책을 좋아했습니다.

책을 펼치면 내가 살고 있던 작은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가 보지 못한 나라에도 갈 수 있었고,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는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하이디가 뛰어다니던 푸른 초원과 높은 산, 알름 할아버지의 오두막과 산양들이 있는 풍경은 어린 내게 현실이라기보다 꿈에 가까운 세상이었습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는 내가 정말 그런 곳에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책 속의 알프스를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걸었습니다.

하이디와 함께 산길을 뛰어다니고, 높은 산 위에 앉아 멀리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책장을 덮으면 다시 내가 살던 작은 마을이었지만,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세상이 아주 넓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이 여행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행기를 타기 훨씬 전부터 나는 이미 책을 통해 먼 곳으로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산

사람은 자라면서 어린 시절의 많은 꿈을 잊어버립니다.

학교를 다니고, 일을 하고, 가족을 이루고,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을 살아내다 보면 한때 무엇을 좋아했는지조차 잊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나 역시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살았습니다.

음악을 공부하고 첼로를 연주하며 살아가는 동안에도 어린 시절 책에서 보았던 알프스는 아주 먼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눈 덮인 산을 보거나 유럽의 풍경을 볼 때면 마음 한구석에서 오래된 장면 하나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푸른 초원을 달리는 하이디와 멀리 보이는 하얀 산.

어린 날의 꿈은 그렇게 아주 작은 불씨처럼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습니다.


쉰을 넘어 만난 어린 날의 꿈

그리고 쉰 살이 넘어 마침내 알프스에 가게 되었습니다.

긴 비행을 하고, 낯선 도시를 지나고, 버스를 타고 산길을 오르며 조금씩 알프스 가까이로 들어갔습니다.

그뤼에르에서 처음 멀리 알프스가 모습을 보여 주었을 때 마음속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어린 시절 책 속에서만 보았던 산이 정말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체르마트를 지나 고르너그라트에 올라 마터호른을 마주했을 때, 아주 오랜 시간이 한순간에 이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 날 책장을 넘기던 작은 소녀와 쉰을 넘어 알프스에 서 있는 내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그 소녀가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한참 동안 산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알프스가 들려 준 것은 침묵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꿈꾸었던 곳에 도착하면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알프스에서 나를 맞아 준 것은 거대한 침묵이었습니다.

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없이 많은 세월을 견뎌 온 설산과 깊은 계곡, 끝없이 펼쳐진 하늘이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침묵 속에서 오히려 많은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고, 모든 것을 이루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때로는 멈추어 서서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해 주는 듯했습니다.

평소에는 크게 느껴지던 걱정과 욕심도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아주 작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작아짐이 이상하게 편안했습니다.


음악을 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들려온 노래

나는 오랫동안 음악을 연주하며 살아왔습니다.

악보에 적힌 음을 읽고, 그 음과 음 사이에 숨어 있는 감정을 찾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음악을 하는 사람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알프스에서는 악보도 악기도 없었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와 눈을 밟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곳에서 하나의 거대한 음악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산과 하늘과 눈, 그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이 아주 오래전부터 연주하고 있던 음악이었습니다.

사람이 만든 음악처럼 시작과 끝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오기 전부터 그곳에 있었고 우리가 떠난 뒤에도 계속될 노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자연스럽게 제목에 ‘노래’라는 말을 넣게 되었습니다.

내가 알프스에서 들었던 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었던 하나의 노래였기 때문입니다.


여행이 한 권의 책이 되기까지

여행을 떠날 때부터 책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알프스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그곳에서 만난 장면들이 자꾸 마음속으로 돌아왔습니다.

프랑크푸르트의 차가운 겨울비, 베른의 오래된 골목, 그뤼에르에서 처음 바라본 알프스, 몽트뢰의 레만호, 테쉬의 작은 산골호텔, 체르마트의 눈길, 그리고 마터호른 앞에서 느꼈던 경외감과 평안까지.

잊고 싶지 않아 하나씩 글로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여행의 기억이 문장이 되고, 문장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알프스의 노래》는 단순한 여행기만은 아닙니다.

어린 시절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된 꿈이 오랜 세월을 지나 현실의 여행이 되고, 그 여행이 다시 한 권의 책으로 돌아온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꿈에도 때가 있다는 것을

어린 시절에는 꿈을 빨리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살아 보니 모든 꿈이 젊은 날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꿈은 아주 오랫동안 마음속에 머물다가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때 비로소 찾아오기도 합니다.

만약 어린 시절에 알프스를 보았다면 나는 그저 아름다운 산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수많은 시간을 살아낸 뒤 그곳에 섰기에 산 앞에서 느꼈던 평안과 감사도 조금은 달랐을 것입니다.

쉰을 넘어 찾아간 알프스에서 나는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게 가장 알맞은 시간에 그곳에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 품어 온 꿈은 반드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음 한편에 조용히 남아 있다가 때가 되면 다시 우리를 부르고, 때로는 아주 먼 곳까지 우리를 데려갑니다.


내 마음에 남은 알프스의 노래

여행은 끝났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알프스에서 들었던 노래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삶이 바빠질 때면 눈 덮인 마터호른을 떠올리고, 마음이 지칠 때면 어린 하이디가 뛰어다니던 푸른 초원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끔 어린 시절의 나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건넵니다.

네가 책에서 보았던 그 산에 결국 가게 되었다고.

그곳은 네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웠다고.

그리고 그 산을 보고 돌아온 네가 언젠가는 그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쓰게 되었다고.

한 권의 책이 한 아이에게 꿈을 주었고, 그 꿈은 수십 년을 지나 한 번의 여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행은 다시 《알프스의 노래》라는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알프스가 내게 들려준 가장 아름다운 노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꿈은 늦어지는 것이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오래 마음에 품고 살아온 길이라면 언젠가 우리는 그 길 위에 서게 된다고.

알프스는 지금도 그렇게 내 마음속에서 조용히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읽은 책 한 권은 오래도록 사람의 마음에 남아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합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는 제게 단순한 동화책이 아니라,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견디게 해 준 친구였고 언젠가 꼭 만나고 싶은 세계였습니다.

쉰 살이 넘어 비로소 알프스에 섰을 때, 저는 더 이상 어린 소녀가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하이디와 함께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오래 품어 온 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우리를 그 자리로 데려간다는 것을 알프스에서 다시 느꼈습니다.


여행자를 위한 마터호른 이야기

스위스 알프스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산 가운데 하나가 마터호른(Matterhorn)이다. 해발 4,478m의 마터호른은 스위스와 이탈리아 국경에 솟아 있으며, 하늘을 향해 날카롭게 솟아오른 피라미드 모양의 봉우리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알프스에는 마터호른보다 높은 산도 있다. 그러나 홀로 우뚝 솟아오른 듯한 독특한 모습 때문에 마터호른은 오래전부터 알프스를 상징하는 산이 되었다. 체르마트에서는 거리와 골목 사이에서도 이 특별한 봉우리를 만날 수 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푸른 하늘 아래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지만 산악 날씨는 빠르게 변한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정상에 어느새 구름이 걸리고, 다시 바람이 불면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마터호른을 여행할 때는 날씨가 허락해 주는 순간 자체가 하나의 행운처럼 느껴진다.


해발 4,478m, 알프스의 상징

마터호른의 높이는 4,478m다. 알프스 최고봉은 아니지만 독립적으로 솟아 있는 듯한 형태와 거의 완벽한 피라미드형 봉우리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알아보기 쉬운 산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마터호른은 독일어 이름이며 프랑스어로는 몽 세르뱅(Mont Cervin), 이탈리아어로는 몬테 체르비노(Monte Cervino)라고 부른다.

‘Matterhorn’이라는 이름은 목초지를 의미하는 ‘Matte’와 봉우리를 뜻하는 ‘Horn’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 아래에서 목축을 하며 살아온 알프스 사람들의 생활과도 이어지는 이름이다.


1865년, 마터호른 최초 등정의 빛과 그림자

마터호른은 한때 오르기 어려운 산으로 여겨졌다. 여러 산악인이 정상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그럴수록 마터호른은 더욱 신비로운 산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마침내 1865년 7월 14일 영국의 산악인 에드워드 윔퍼(Edward Whymper)를 포함한 7명의 등반대가 체르마트 쪽 회른리 능선을 통해 최초로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정상 정복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산 도중 일행 가운데 네 명이 북벽 아래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일곱 명 가운데 세 명만 체르마트로 돌아왔다.

마터호른 최초 등정은 그렇게 영광과 비극을 동시에 품은 알피니즘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았다.

오늘날 체르마트의 마터호른 박물관(Matterhorn Museum - Zermatlantis)에서는 당시 등정과 관련된 자료를 볼 수 있다. 특히 최초 등정 당시 사고와 관련된 끊어진 로프가 보존되어 있어 마터호른 등반의 역사를 더욱 생생하게 전해 준다.


마터호른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곳

1. 고르너그라트 · Gornergrat
체르마트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대표적인 전망지다. 해발 3,000m가 넘는 곳에서 마터호른뿐 아니라 수많은 4,000m급 알프스 봉우리와 빙하가 펼쳐지는 장대한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2. 로트호른 · Rothorn
마터호른의 아름다운 형태를 감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전망지역이다. 높은 알프스 봉우리와 마터호른이 어우러지는 파노라마가 인상적이다.

3. 마터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 · Matterhorn Glacier Paradise
체르마트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해 올라갈 수 있는 고산 전망지역이다. 빙하와 알프스의 고봉들이 펼쳐지는 압도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4. 체르마트 마을
마터호른을 만나기 위해 반드시 높은 전망대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체르마트의 골목과 오래된 목조주택 사이에서도 마터호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마터호른을 바라볼 때 기억하면 좋은 것

마터호른은 산악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아침에는 정상이 선명하게 보이다가도 짧은 시간 안에 구름 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 반대로 하루 종일 구름에 가려 있던 봉우리가 잠깐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따라서 체르마트에서 날씨가 맑고 마터호른이 잘 보인다면 그 순간을 미루지 않고 즐기는 것이 좋다.

고르너그라트와 같은 고산지역은 체르마트 마을보다 기온이 훨씬 낮고 겨울에는 눈과 바람도 강할 수 있다. 방한복과 미끄럽지 않은 신발을 준비하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좋다.

마터호른은 단순히 높이로 기억되는 산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정상에 도전했던 역사와 그 아래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 그리고 체르마트의 오래된 산악문화가 함께 쌓여 오늘날 스위스를 상징하는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고르너그라트에서 마터호른을 바라보며 맛보는 한 끼

Glacier Alpine Kitchen

고르너그라트 정상까지 올라왔다면 서둘러 다시 내려가기보다 마터호른과 알프스의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식사를 즐겨보는 것도 좋다.

해발 약 3,100m에 자리한 3100 Kulmhotel Gornergrat 안의 Glacier Alpine Kitchen은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한 식재료를 이용해 알프스와 스위스 지역의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이다.

창밖으로는 마터호른을 비롯한 알프스의 고봉과 빙하가 펼쳐진다. 높은 산 위에서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조금 전까지 바라보았던 설산을 다시 천천히 감상하는 시간은 고르너그라트 여행의 또 다른 추억이 된다.

위치 : 3100 Kulmhotel Gornergrat, Gornergrat 3100m, 3920 Zermatt, Switzerland


마터호른 앞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

Sky Lounge · 3100 Kulmhotel Gornergrat

고르너그라트에서는 화려한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보다 눈앞에 펼쳐진 알프스를 바라보며 따뜻한 음료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이 더 특별하게 느껴질 수 있다.

3100 Kulmhotel Gornergrat의 Sky Lounge는 실내와 야외 공간을 갖춘 라운지로, 마터호른을 바라보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산악열차를 타고 해발 3,000m가 넘는 곳까지 올라와 눈앞의 마터호른을 바라본 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잠시 앉아 있는 시간.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고르너그라트 여행은 충분히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위치 : 3100 Kulmhotel Gornergrat, Gornergrat 3100m, 3920 Zermatt, Switzerland

※ 고산지역의 레스토랑과 라운지는 계절과 기상 상황에 따라 운영시간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운영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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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에서는 스위스 여행의 마지막 여정인 루체른, 호수 위에 머문 시간을 함께 걸어갑니다. 카펠교와 루체른 호수, 그리고 여행의 끝에서 만난 가장 따뜻한 풍경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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