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침으로 만난 이웃들

   수지침으로 만난 이웃들


바닷가 횟집에서 만난 한 어부

임상을 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좌측 마비가 와서 근육이 경직된 중풍 환자인 한 어부를 치료하게 되었다.

어느 날 지인들과 서생 바닷가의 한 횟집에서 회를 먹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혼자서 열심히 회를 뜨고 손님들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는데, 남편은 한쪽 구석에서 술을 마시며 계속 술주정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손님인 줄 알고 주인아주머니께 시끄러운 손님을 조금 조용하게 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아주머니는 죄송하다며 사실은 자기 남편인데 몇 개월 전 갑자기 풍이 왔다고 했다. 대학병원을 비롯해 한의원까지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로 치료를 받아 보았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어,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며 이해해 달라고 했다.

아저씨의 낯빛은 까맣고 좌측은 마비가 심해서 누운 것도 앉은 것도 아닌 불편한 자세로 벽에 기대어 있었다.

혼자 횟집을 꾸려 가는 아주머니도 너무 힘들어 보였고, 아저씨 역시 얼마나 답답하면 저럴까 싶어 마음이 쓰였다.

가게를 나오기 전 나는 아주머니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혹시 괜찮다면 내가 공부한 수지침을 한번 놓아 드려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병이 진행된 지 이미 오래되었고 한의원에서 침도 수없이 맞았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며, 달리 방법도 없으니 한번 해 보라고 허락했다.

그래서 다음 날 오후로 시간을 정하고 그 집을 다시 찾아갔다.

맥을 살피고수지침 진단법에 따라 몸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아저씨는 풍이 오기 전 돼지고기를 많이 먹었는데 소화가 되지 않고 체기가 심해 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몸에 마비가 와 있었다고 했다.

왼손에 침을 놓으려고 손을 잡아 보니 손이 까맣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손바닥도 단단해 침이 쉽게 들어가지 않았다.

압진봉으로 손의 몇 군데를 자극했는데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왼손에 침을 놓아도 아저씨는 거의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반대로 오른손에 침을 놓았을 때는 조금씩 따끔거린다고 반응했다.

침을 놓은 뒤에는 뜸을 떠드리고 서암봉을  붙여  드린다음 3일 뒤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씀드린 후 집으로 돌아왔다.

중풍 환자를 돌보는 일은 내게도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었다. 임상 경험도 많지 않았는데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하다.

그때는 수지침을 공부하는 일이 무척 재미있었다. 배운 것을 실제로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젊은 부부의 모습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3일 뒤 다시 찾아갔을 때 아주머니의 얼굴이 전보다 밝아 보였다.

남편이 침을 맞은 뒤 몸이 한결 가볍다고 이야기한다며 고마워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나 역시 조금 용기가 생겼고, 이후에도 그 집을 찾아가 돌봐 주기로 했다.


굳어 있던 손에 찾아온 변화

치료를 시작한 지 2주 정도 되는 어느 날, 침을 놓으려고 아저씨의 손을 만지다가 깜짝 놀랐다.

까맣고 딱딱하게 굳어 있던 왼손에 붉은빛이 돌고 있었고, 손도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오른손을 잘못 잡았나 싶어 다시 확인했을 정도였다.

분명 왼손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침을 놓았을 때였다. 처음에는 거의 감각이 없다던 아저씨가 이제는 따끔거린다며 반응을 보였다. 당시 치료 과정에서 침을 놓았던 자리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아저씨는 다리를 움직이는 것도 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다며 계속 침을 놓아 달라고 부탁했다.

매번 그 시골마을까지 찾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기왕 시작한 일이니 한 달 정도는 계속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치료를 시작한 지 3주쯤 되었을 때였다. 평소처럼 침을 놓으러 갔는데 집에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몸이 다시 나빠져 병원에라도 갔나 싶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더니 아저씨가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너무 놀라 한동안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며칠 전부터 다리 마비가 많이 풀린 것처럼 느껴져 이제 혼자 조금씩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반갑고 기쁜 마음보다 걱정이 먼저 앞섰다. 아직 몸이 충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니 절대로 무리해서 움직이면 안 된다고 거듭 당부했다.

그날 다시 왼손을 살펴보니 손가락이 거의 다 펴져 있었다. 까맣고 딱딱하게 굳어 있던 모습도 많이 사라지고 연한 붉은빛이 도는 부드러운 손으로 변해 있었다.

이제 침을 놓을 때마다 아저씨는 따끔따끔하다며 엄살까지 부렸다. 처음 만났을 때 침을 놓아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그 모습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먼 길을 다녀왔는데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한 달이 거의 다 되어 갈 무렵에는 침을 놓으러 갈 때마다 아저씨가 집에 없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 때면 아주머니가 남편을 찾아 동네를 돌아다니곤 했다.

나는 이제 치료를 마무리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그만 마무리하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리자 두 분은 오히려 내게 너무 미안해하며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앞으로 생활하면서 조심해야 할 점들을 이야기해 주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를 남겨 두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이어졌던 만남을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한 달 동안 매주 두세 번씩 그 집을 찾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시골이라 버스도 자주 다니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는 개를 유난히 무서워했는데 그 동네에는 큰 개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닐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 집을 찾아갈 때마다 혹시 길에 큰 개가 있지는 않은지 살피며 긴장해서 걷곤 했다.

그래도 걷지 못하고 늘 누워 지내던 아저씨가 다시 움직이며 동네를 돌아다니고 부인을 돕는 모습을 보니, 오랫동안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했다.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아주머니가 내 손을 꼭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고 말씀하셨을 때는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시 바다로 나간 어부

치료를 마친 지 2주일쯤 지난 어느 날 밤, 아저씨의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혹시 가족과 함께 자기네 횟집에 한번 와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전화를 받는 순간 덜컥 걱정부터 되었다. 혹시 남편의 몸이 다시 나빠진 것은 아닐까 싶어 남편의 차를 타고 서둘러 바닷가 시골마을로 향했다.

횟집에 도착해 보니 손님은 아무도 없고 가게 안에는 불만 환하게 켜져 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뜻밖에도 두 분이 환한 얼굴로 우리 가족을 반겨 주었다.

식탁에는 음식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는 싱싱한 회가 푸짐하게 놓여 있었다.

그날 아저씨가 드디어 다시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바다에서 직접 잡아 온 싱싱한 횟감을 내게 가장 먼저 대접하고 싶었다며 어서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걱정하며 달려왔던 나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우리 가족은 두 분과 함께 정말 기쁜 마음으로 잔칫상 같은 저녁을 나누었다.

두 분은 식탁 위에 놓인 횟감의 이름을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며 많이 먹으라고 권했다. 살면서 그렇게 싱싱하고 푸짐한 회를 마음껏 먹어 본 날이 또 있었을까 싶다.

식사를 하며 두 분의 나이를 처음으로 물어보았다. 고생을 많이 한 얼굴이라 마흔 중반은 훨씬 넘었으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우리보다 겨우 몇 살 더 많았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처음 횟집에서 만났던 날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한쪽 구석에 힘없이 기대어 술을 마시던 남편과, 혼자서 횟집을 꾸려 가느라 쉴 틈이 없던 부인의 모습이었다.

그랬던 아저씨가 다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자신의 일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내가 배운 작은 지식과 시간이 한 젊은 가정이 다시 일상을 찾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는 생각에 참으로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일을 계기로 수지침을 공부하며 경험하는 범위도 조금씩 넓어졌다.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한동안 우리 집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남편 회사의 부장님들이 점심시간마다 침을 맞으러 오시곤 해서 나중에는 내가 남편에게 이제 그만 좀 모시고 오라고 잔소리를 할 정도였다.

당시 나는 수지침에서 배운 음양과 오장육부의 균형에 관한 이론을 토대로 여러 사람을 만나고 경험을 쌓아 갔다. 몇 년 동안 중풍, 퇴행성관절염, 당뇨, 원형탈모증 등 여러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내게 침을 맞으러 오는 사람들 때문에 한동안 우리 집은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돈을 받지 않고 봉사로 해 주었기에 침과 여러 재료를 마련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며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제철 과일과 채소들로 우리 집 냉장고는 늘 가득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내 인생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베풀기도 했고, 또 가장 많은 사랑을 돌려받기도 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택에 처음 들어와 갑상선기능항진증으로 많이 아팠을 때 물심양면으로 나를 도와주었던 사택 식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받은 사랑을 돌려줄 수 있어서 감사하기도 했다.

내 몸도 그 무렵에는 많이 건강해져 있었다. 정상 체중을 되찾았고 일상을 살아갈 힘도 충분했다.

아팠던 내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다시 일어섰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내가 다른 사람의 아픔 곁에 앉아 작은 도움을 나누고 있었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것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받은 사랑이 내 안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누군가에게 건너가는 것.


작가 노트  

돌이켜보면 수지침을 공부하며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병의 이름이나 치료 방법이 아니다. 다시 바다로 나가 자신이 잡은 회를 한 상 가득 차려 놓고 우리 가족을 기다리던 그 어부 부부의 환한 얼굴이다.

내가 아팠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건강을 되찾은 뒤에는 나도 누군가의 손을 잡아 줄 수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사랑은 받은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건네줄 때 더 커진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 가고 있었다.

특별히 서생 작은 바닷가 마을의 어부 아저씨를 돌보았던 경험은 내게 오래도록 사람들의 아픔을 가까이에서 살피고 봉사를 이어 갈 수 있는 동기를 심어 주었다.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는 시골 마을의 버스를 기다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어부 부부의 모습을 생각하면 힘든 시간도 그냥 지나가졌다.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고 그 필요를 채워 주는 기쁨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쉽게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수지침을 공부할 때 교수님은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다.

“병도 하늘이 내고 의사도 하늘이 낸다.”

그 시절 내게 왔던 수많은 사람들은 하늘이 내게 이어 준 귀한 인연들이었다.


서생의 작은 바닷가 마을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서생의 작은 바닷가 마을을 생각하면 그때의 풍경이 눈앞에 떠오른다.

도시처럼 버스가 자주 다니는 곳도 아니었다. 하루에 몇 번 오지 않는 버스 시간을 맞추어 길을 나서야 했고, 한 번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에 어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내가 그곳으로 가는 날이면 그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기다린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되었다.

몸이 피곤한 날도 있었고 멀리까지 가는 일이 힘겹게 느껴지는 때도 있었다. 그래도 기다리고 있을 얼굴을 떠올리면 다시 길을 나서게 되었다.

봉사는 내가 시간이 남아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내 시간을 내어 놓아야 했고, 조금 불편하고 힘들어도 누군가를 만나러 가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더 많은 것을 받고 오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

처음에는 몸의 불편함을 살피기 위해 만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삶을 알게 되었다.

어부에게 바다는 단순히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었다.

바다는 일터였고 가족의 삶을 이어 주는 곳이었다.

몸이 불편해 바다에 나가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히 일을 쉬는 문제가 아니었다. 평생 살아온 삶의 자리를 잠시 잃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의 몸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까지 함께 바라보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디가 아픈지만 묻는 것으로는 한 사람을 다 알 수 없었다.

어떤 일을 하며 살아왔는지, 무엇을 걱정하는지, 다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듣다 보면 그 사람의 아픔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수지침을 공부하면서 나는 손 위의 작은 자리들을 배웠지만, 사람들을 만나면서는 그보다 훨씬 넓은 삶을 배우고 있었다.


다시 바다로 나간 어부

시간이 지나 어부 아저씨가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참 기뻤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 가족을 초대해 주셨다.

그날의 밥상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자신이 바다에서 잡아 온 싱싱한 생선으로 회를 떠 한 상 가득 차려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부 부부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그 밥상을 마주하는 순간 마음 한편이 뭉클해졌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내가 더 큰 대접을 받고 있었다.

한 상 가득 놓인 회보다 더 마음에 남았던 것은 우리를 기다렸을 두 사람의 마음이었다.

바다에서 직접 잡은 것을 가장 좋은 음식으로 내어놓고 함께 먹고 싶어 했던 마음.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래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병의 이름보다 그날의 밥상과 두 사람의 환한 얼굴이 먼저 떠오르는지도 모르겠다.


받았던 손을 다시 내미는 일

내가 다른 사람을 돕는 자리에 서 보니 문득 내가 힘들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나 역시 아팠을 때 혼자 그 시간을 지나온 것이 아니었다.

걱정해 준 사람이 있었고 곁에 있어 준 사람이 있었으며,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받은 마음들이 내 안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조금 건강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건넬 수 있게 되었을 때, 받은 사랑을 다시 누군가에게 건네고 있었다.

사랑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이 받은 것을 모두 갚을 수는 없다.

그러나 나에게 주었던 사람에게 돌려주지 못하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건넬 수는 있다.

그렇게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마음이 이어지면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누는 사람이 더 많이 받았습니다

봉사를 하기 전에는 도움을 주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가진 작은 것을 나누었지만 그분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기다려 주는 마음을 배웠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으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단단함을 보았다.

때로는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받았고, 때로는 두 손을 꼭 잡아 주는 것으로 충분한 감사의 마음을 받았다.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 주는 기쁨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컸다.

그 기쁨 때문에 먼 길도 갈 수 있었고, 힘든 날에도 다시 가방을 챙길 수 있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내 삶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늘이 이어 준 인연

수지침을 공부할 때 교수님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다.

“병도 하늘이 내고 의사도 하늘이 낸다.”

그때는 그 말을 공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관한 이야기로 들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을 만나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마음에 남았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 가운데는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참 신기한 인연들이 있다.

내가 조금 일찍 그 공부를 그만두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

봉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름도 얼굴도 몰랐을 사람들.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는 버스를 타고 그 작은 바닷가 마을까지 가지 않았다면 평생 마주치지 못했을 어부 부부.

그런 사람들이 어느 시기 내 삶 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고 걱정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시절의 만남을 단순한 우연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 내게 왔던 사람들은 모두 내 삶의 한 시절을 함께 지나도록 하늘이 이어 준 귀한 인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남았습니다

수지침을 공부했던 시간은 지나갔지만 그때 만났던 사람들은 아직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무엇을 어떻게 공부했는지는 세월이 흐르면서 희미해지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 사람의 얼굴은 남는다.

나를 기다리던 얼굴, 고맙다며 손을 잡아 주던 얼굴, 다시 바다에 나가 잡아 온 회를 한 상 가득 차려 놓고 웃던 얼굴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몸에 관한 지식만은 아니었다.

아픈 사람 곁에 잠시 머무는 법을 배웠고,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시간을 내어 찾아가는 기쁨을 배웠다.

그리고 내가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어머니에게서 시작되어 내게로 흘러온 돌봄과 사랑도 어쩌면 그렇게 또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갯새암』을 쓰며 그 시절을 다시 돌아보면 수지침보다 먼저 사람들이 생각난다.

내 삶에 잠시 들어왔다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은 사람들.

그들은 내가 도와준 사람들이기 전에, 나에게 나눔의 기쁨과 사람의 따뜻함을 가르쳐 준 사람들이었다.

돌이켜보면 수지침을 공부하며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병의 이름이나 치료 방법이 아니다. 다시 바다로 나가 자신이 잡은 회를 한 상 가득 차려 놓고 우리 가족을 기다리던 그 어부 부부의 환한 얼굴이다.

내가 아팠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건강을 되찾은 뒤에는 나도 누군가의 손을 잡아 줄 수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사랑은 받은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건네줄 때 더 커진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 가고 있었다.

특별히 서생 작은 바닷가 마을의 어부 아저씨를 치료해 준 경험은 내게 오래도록  임상을 할 수 있는 동기를 심어 주었다.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는 시골 마을의 버스를 기다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어부 부부의 모습을 생각하면 힘든 시간도 그냥 지나가 졌다.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고 그 필요를 채워주는 기쁨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수지침을 공부 할 때 교수님이 자주 하신 그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병도 하늘이 내고 의사도 하늘이  낸다고...

그 시절 내게 왔던 수많은 환자들은 하늘이 내게 이어 준 귀한 인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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