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에 나타난 수지침 선생님

       잘츠부르크에 나타난 수지침 선생님


잘츠부르크에서 수지침 선생님이 되다

수지침을 배워서 가장 좋았던 건 역시 외국에 나갈 때였다. 해외에 있으면 갑자기 몸이 아파도 제때 치료받기가 힘들 때가 많다. 특히 급하게 체하거나 두통, 치통 같은 증상이 생기면 낯선 곳에서는 더욱 당황스럽다.

학생들을 데리고 잘츠부르크에 음악캠프를 갔을 때의 일이다.

각지의 대학에서 온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한 달 정도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매일 캠프 일정을 소화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오랜 기간 생활하다 보니 꼭 한두 명씩 갑자기 몸이 아픈 일이 생기곤 했다.

거의 매일 레슨을 받고 몇 시간씩 연습한 뒤 마지막에는 연주까지 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캠프가 중반쯤 지나면 다들 피로가 쌓여 어딘가 탈이 나곤 했다.

30명 가까이 되는 우리 팀에서도 교대로 배탈이나 두통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생겼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배운 수지침을 이용해 간단한 처치를 해 주곤 했다.

그러다 보니 캠프 일정 가운데 아픈 학생들을 돌보는 일이 제법 많아졌다. 덕분에 나는 어느새 음악 선생님보다 ‘수지침 선생님’으로 더 유명해졌다.

현지에도 의사가 있었고 약국도 있었지만, 학생들은 가벼운 두통이나 갑자기 체한 듯한 불편함이 생기면 먼저 나를 찾아오곤 했다. 한번 내게 도움을 받았던 학생이 다른 친구를 데리고 오면서, 어떤 날에는 내 캠프 일정에 무리가 갈 정도로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래도 나는 웬만하면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나 역시 해외에 나가 아프면 얼마나 서럽고 힘든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몸까지 아프면 작은 통증도 훨씬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학생들을 돌봐 주려고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캠프 일정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마지막이 가까워졌다.

주말을 이용해 우리는 관광버스를 타고 1박 2일 일정으로 비엔나에 가게 되었다. 빡빡한 캠프 일정 때문에 유럽까지 와서도 관광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던 우리는 모처럼 비엔나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음악과 연습에 매달려 있던 학생들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나 역시 잠시 ‘선생님’이라는 역할을 내려놓고 비엔나의 거리를 바라보며 모처럼 여행자가 된 기분을 누렸다.


비엔나의 밤, 다시 시작된 호출

그날 저녁 우리는 비엔나에서 유명하다는 립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3주 가까이 바쁜 캠프 일정을 보내면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제대로 먹지 못한 날도 많았던 터라, 오랜만에 만난 돼지 등갈비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갈비를 앞에 두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모처럼 마음껏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것을 한꺼번에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평소보다 조금 무리하게 먹기도 했다.

그렇게 즐거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방에 들어가 얼마 지나지 않아 호출이 시작되었다.

같이 간 선생님 한 분이 심하게 체한 것 같다며 나를 찾았다. 약을 먹었는데도 속이 편해지지 않아 몹시 불편하다고 했다.

나는 해외에 나갈 때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늘 수지침 도구를 챙겨 다녔다. 다행히 그날도 가지고 있었기에  손의 관련 부위를 자극해 주었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던 선생님은 잠시 후 조금 살 것 같다며 연신 미안해했다.

괜찮다며 선생님을 안심시키고 나도 이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한숨을 돌리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연세대에서 온 교수님 한 분이 급하게 나를 찾았다.

학생 한 명이 저녁에 립을 먹다가 치아 쪽에 문제가 생겼는지 갑자기 심한 통증을 호소한다는 것이었다.

급히 가 보니 학생은 잇몸이 퉁퉁 부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손에서 치아와 관련된 상응점을 찾아보았다. 한 부위를 눌렀을 때 학생이 깜짝 놀랄 만큼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 부위를 중심으로   간단한 처치를 하고, 붙이는 형태의 수지침도  붙여 주았다.

처치를 마친 뒤 교수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학생이 조금 편안해진 표정으로 이제 살 만하다고 말했다.

그제야 교수님과 나도 긴장이 풀렸다.

우리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어지간히 먹지, 이놈들아.”

걱정했던 마음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나온 말이었다. 교수님도 많이 놀라셨는지 내 손을 잡고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나 역시 학생이 한결 편안해진 모습을 보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다만 치아 통증은 원인을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니 이후에도 증상이 계속되거나 다시 아프면 현지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츠부르크에서는 음악을 가르치느라 바빴고, 모처럼 찾아온 비엔나에서는 여행을 즐기고 싶었는데 그날 밤에도 나는 또다시 ‘수지침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흐뭇했다

낯선 외국에서 갑자기 아파 당황한 사람에게 내가 작은 봉사가 잠시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감사했다.


음악보다 수지침으로 기억된 선생님

다음 날 아침, 전날 밤 치통으로 힘들어했던 학생을 다시 만났다. 학생은 얼굴의 부기가 많이 가라앉았고 통증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치아 신경이 자극을 받으면 다시 아플 수 있으니 당분간 음식을 조심해서 먹고, 통증이나 부기가 다시 나타나면 반드시 치과 진료를 받아 보라고 당부했다.

그렇게 캠프가 끝날 때까지 우리 팀의 학생들 가운데 제법 많은 아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나를 찾아왔다.

덕분에 내 제자들은 내가 음악을 가르치는 것보다 수지침을 놓는 일을 더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아 때로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기도 했다.

“선생님, 우리 선생님은 수지침도 정말 잘하세요.”

아이들이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면 음악 이야기는 어디로 갔는지 수지침 이야기부터 꺼내곤 했다.

모든 캠프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무렵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유명인사 아닌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복도에서 나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학생들은 장난스럽게 손을 내밀고 침을 맞는 흉내를 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달 가까운 음악캠프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 각지의 대학에서 함께 온 선생님들도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한국에 돌아가면 자기들도 수지침을 한번 배워 보고 싶다고 했다.

학생들을 데리고 음악을 공부하러 잘츠부르크까지 갔는데 정작 마지막에는 음악 선생님보다 ‘수지침 선생님’으로 더 인정받게 되었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지금 돌이켜보면 그 또한 참 따뜻한 추억이다.

낯선 외국에서 한 달 가까이 함께 생활하다 보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서로의 모습이 보인다. 누군가 아프면 같이 걱정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서로 나누며 어느새 한 가족처럼 가까워졌다.

음악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그 시간 속에는 음악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아픈 학생의 손을 잡아 주고, 걱정하는 선생님을 안심시키고, 서로 웃고 챙겨 주었던 시간들이 함께 있었다.

수지침을 배우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또 하나의 인연이었다.

나에게 수지침은 단순히 손에 침을 놓는 기술로만 남지 않았다. 내가 아팠던 시간을 지나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한 배움이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을 돌보는 작은 통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배움은 한국을 넘어 멀리 잘츠부르크와 비엔나에서도 사람들과 나를 이어 주었다.

잘츠부르크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비엔나를 여행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름다운 유럽의 풍경과 음악만 생각나는 것은 아니다.

아프다며 손을 내밀던 학생들,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찾아오던 선생님들, 그리고 치료가 끝난 뒤 안도하며 함께 웃었던 얼굴들이 떠오른다.

그것 역시 음악만큼이나 오래 남은 여행의 기억이다


작가노트 

음악을 공부하러 떠난 해외 음악 캠프에서 뜻밖에도 수지침은 사람들과 나를 이어 주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 말과 문화가 다른 낯선 곳에서도 누군가 아프다고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아 주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작은 도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아픈 사람 곁에   누군가 함께 있어 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음악 연수를 하러 가서 수지침을 놓고 있는 내 모습이 엉뚱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필요와 고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연습 시간에 쫓기며 지낸 캠프 일정이 었지만 수지침이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많은 사람들과의 소중한 만남이 인연으로 이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음악을 공부하러 떠난 잘츠부르크

잘츠부르크에 간 목적은 분명 음악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연습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빠듯했다. 캠프 일정에 맞춰 움직이고 연습 시간을 챙기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해외 음악 캠프는 특별한 시간이다. 평소와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음악을 만나고, 여러 사람의 연주를 들으며 자신의 부족한 부분도 발견하게 된다.

나 역시 그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연습하고 싶었고, 음악을 듣고 배우는 일에 온 마음을 쏟고 싶었다.

그런데 음악만 생각하며 지낼 것 같았던 그곳에서 뜻밖에도 한국에서 공부해 두었던 수지침이 자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잘츠부르크에 나타난 수지침 선생님

처음에는 나도 조금 우스웠다.

첼로를 공부하러 잘츠부르크까지 와 놓고 어느 순간 사람의 손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 모습이라니.

한국에서 수지침을 공부할 때만 해도 그것을 해외 음악 연수에서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함께 생활하다 보면 누군가는 몸이 불편하다고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오랜 연습과 낯선 환경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했다.

내가 수지침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불편함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손을 살피고 나면 어느새 다른 사람이 찾아왔다.

그렇게 나는 음악 캠프 한가운데에서 뜻하지 않게 작은 '수지침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연습하러 온 것인지 사람들의 손을 살피러 온 것인지 모르겠다며 스스로 웃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찾아와 도움을 구하면 모른 척하기가 쉽지 않았다.

음악 연습 시간은 아까웠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의 불편함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손을 내밀면 시작되는 이야기

수지침을 하면서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그전까지는 얼굴만 알고 지나쳤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이름도 잘 모르던 사람과 가까워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어디가 불편한지를 이야기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가 이어졌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음악을 공부하는지, 이번 캠프에서 무엇이 힘든지, 가족은 어떻게 지내는지까지 이야기는 점점 넓어졌다.

수지침이 아니었다면 서로 인사만 하고 지나쳤을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이 손을 내밀면서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도 내어 주었다.

나는 그때 사람의 손이 참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가만히 마주 앉는 순간, 낯선 사람 사이에 있던 거리도 조금씩 가까워졌다.


말이 달라도 마음은 통했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언어가 가장 먼저 사람 사이에 벽을 만든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렵고, 상대방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아프다는 말과 걱정하는 마음에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디가 불편한지 손짓으로 가리키기도 하고, 표정만 보아도 힘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곁에 앉아 손을 살펴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작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낯선 나라에서 몸이 불편할 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잠시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경험을 통해 사람을 돌보는 마음에는 국적도 언어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음악과 돌봄은 닮아 있었습니다

잘츠부르크에서 음악을 공부하며 수지침으로 사람들을 만나던 그 시절을 돌아보면 전혀 다른 두 가지 일이 이상하게도 닮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도 결국 사람에게 닿기 위해 하는 것이었다.

연주자가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도 음악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혼자만의 음악일 수 있다.

사람을 돌보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보다 눈앞에 있는 사람을 얼마나 따뜻하게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할 때가 있었다.

첼로를 연주할 때는 소리로 사람의 마음에 다가갔고, 수지침을 할 때는 손을 마주 잡으며 사람에게 다가갔다.

방법은 달랐지만 결국 두 가지 모두 사람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당시에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돌아보니 음악과 돌봄은 내 삶에서 전혀 다른 길이 아니었다.

두 길 모두 사람의 마음 가까이 가는 일이었다.


연습 시간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솔직히 마음이 급할 때도 있었다.

해외까지 음악을 공부하러 왔으니 조금이라도 더 연습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누군가 찾아오면 연습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쉽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사람을 돌보아주고  보내고 나면 마음 한편에서는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아보니 그 시간은 음악 공부를 방해한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음악만 공부했다면 배우지 못했을 또 하나의 삶의 수업이었다.

연습실에서 얻은 것은 음악이었고, 사람들과 마주 앉아 얻은 것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여행이 끝난 뒤 더 오래 남은 것은 의외로 그렇게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 배웠던 것처럼

수지침을 처음 배울 때는 그것이 내 삶의 어디까지 따라올지 알지 못했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했던 공부가 이웃을 만나게 했고, 작은 시골 마을의 어르신들을 만나게 했으며, 결국 먼 잘츠부르크까지 따라왔다.

돌이켜보면 배움에는 우리가 미리 알 수 없는 길이 숨어 있는 것 같다.

당장 어디에 쓰일지 몰라도 정성껏 배워 둔 것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순간 하나의 지식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작은 다리가 된다.

잘츠부르크에서의 수지침이 내게 그랬다.

수지침이 아니었다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사람들과 마주 앉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짧게나마 서로의 삶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잘츠부르크를 떠올리면 음악만 생각나는 것은 아니다.

연습실과 첼로,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 사이로 내게 손을 내밀었던 사람들의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음악을 공부하러 떠났던 나는 그곳에서도 결국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배운 것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순간, 그 배움은 비로소 내 것만이 아니게 된다는 것을.

잘츠부르크에서 나는 음악을 공부했고, 수지침으로 사람을 만났으며, 그 두 가지를 통해 결국 사람의 마음에 가까이 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음악을 공부하러 떠난 해외 음악 캠프에서 뜻밖에도 수지침은 사람들과 나를 이어 주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 말과 문화가 다른 낯선 곳에서도 누군가 아프다고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아 주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작은 도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아픈 사람 곁에 누군가 함께 있어 준다는 것 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음악 연수를 하러 가서 수지침을 놓고 있는 내 모습이 엉뚱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필요와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서 어쩔 수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연습 시간에 쫓기며 지낸 캠프 일정이었지만 수지침이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많은 사람들과의 소중한 만남이 인연으로 이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비엔나에서 만난 푸짐한 립 요리

잘츠부르크 음악캠프의 빡빡한 일정을 보내고 모처럼 비엔나에 도착했을 때, 우리에게 가장 반가웠던 것 가운데 하나는 오랜만에 마음껏 즐기는 따뜻한 저녁 식사였다.

그날 찾아간 립 레스토랑의 커다란 접시에는 노릇하게 구워진 돼지 등갈비가 푸짐하게 담겨 있었다. 오랫동안 입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제대로 먹지 못했던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모처럼 익숙하고 진한 맛을 만나 신이 났다.

유럽의 립 요리는 돼지 갈비에 소금과 후추, 허브나 향신료를 더해 굽고, 마지막에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 소스를 발라 다시 한번 구워 내는 경우가 많다. 겉은 진하게 구워지고 속살은 부드럽게 익어 손으로 하나씩 뜯어 먹는 재미가 있다.

비엔나의 전통 음식이라고 하면 슈니첼이나 굴라시, 타펠슈피츠 등이 먼저 떠오르지만, 여행자들에게는 푸짐한 립 요리 역시 맥주와 함께 즐기기 좋은 인기 메뉴 중 하나다.


립과 함께 즐기면 좋은 음식

립은 양이 많고 맛이 진하기 때문에 곁들이는 음식이 중요하다. 감자튀김이나 구운 감자, 양배추 샐러드, 피클처럼 담백하거나 새콤한 음식이 잘 어울린다.

특히 기름진 고기 사이사이에 새콤한 피클이나 샐러드를 곁들이면 입안이 한결 산뜻해진다. 겨자소스나 바비큐소스를 조금씩 곁들여 먹는 것도 좋다.

현지 레스토랑에서는 립 한 접시의 양이 생각보다 많을 수 있으므로 여러 명이 함께 간다면 처음부터 너무 많이 주문하기보다 다른 메뉴와 나누어 먹는 편이 좋다.

우리처럼 오랜 캠프 생활 끝에 허기진 마음으로 식탁에 앉았다면 특히 더 그렇다. 맛있다고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었다가는 여행 중 속이 불편해질 수도 있으니 천천히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다.


집에서 간단하게 즐기는 비엔나 여행의 맛

여행에서 먹었던 립을 집에서도 어렵지 않게 떠올려 볼 수 있다.

돼지 등갈비를 찬물에 잠시 담가 핏물을 뺀 뒤 소금과 후추로 기본 간을 한다. 여기에 다진 마늘, 간장, 꿀이나 올리고당, 케첩 또는 바비큐소스를 섞어 만든 소스를 고루 발라 숙성시키면 된다.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서 속까지 충분히 익힌 뒤 마지막에 소스를 한 번 더 발라 겉면을 노릇하게 구우면 달콤하고 짭조름한 립이 완성된다.

구운 감자와 양배추 샐러드, 피클을 곁들이고 따뜻한 빵 한 조각까지 올려 두면 어느새 식탁 위에 그날의 비엔나가 다시 찾아온 듯하다.

음식은 때때로 오래전 여행의 시간을 가장 빠르게 불러오는 기억의 문이 된다. 지금도 립 요리를 보면 잘츠부르크 음악캠프를 마치며 비엔나에서 학생들과 웃고 떠들던 그 저녁이 먼저 떠오른다.


여행의 맛은 혀끝에서 사라져도, 함께 웃었던 사람들과 그날의 풍경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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