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의 바람을 타고 온 현미채식
웰빙의 바람과 현미채식
몇 년이 지난 후 웰빙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올바른 먹거리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었다.
그즈음 나도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학교에 가고 유학도 다녀오며, 스트레스와 피로 때문에 조금씩 건강이 나빠져 가고 있었다.
음악 공부를 하면서 더 이상 사람들에게 수지침을 놓아 주지는 못했다. 가끔 내가 아플 때나 가족이 아픈 경우, 해외에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수지침을 더 이상 잡을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때마침 불어온 웰빙의 바람을 타고 내 관심도 다시 먹거리로 돌려지고 있었다.
10년 동안 유지해 오던 45㎏의 몸무게가 스트레스와 과로, 불규칙한 식사로 인해 50㎏까지 육박해 있어서 현미채식으로 체중을 잡아 보기로 했다.
TV에서는 현미채식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가 빈번히 방송됐다.
나 또한 현미채식의 효능을 알기 위해 도서관과 서점을 들락거렸다. 대구 시립병원의 한 의사선생님이 약을 처방하지 않고 현미, 야채, 과일만 먹는 식사법으로 고혈압과 당뇨, 비만을 관리하는 영상을 보고 나도 해 볼 용기가 생겼다.
때마침 재림이도 유학을 가고 남편도 다른 지방에 전근을 가 있어서 바로 현미식을 시작할 수 있었다.
원래 야채와 과일을 좋아하는지라 까끌까끌한 현미밥을 먹는 걸 제외하고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고기, 생선, 계란, 우유를 완전히 끊고 현미채식을 시작하자 처음 두 달은 확실히 살이 조금 빠졌다. 그리고 몸이 많이 가벼워지면서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지곤 했다.
엄마에게 닥친 첫 번째 뇌경색
현미의 매력에 푹 빠져 현미채식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친정엄마가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뇌로 올라가는 두 개의 큰 혈관 중 한쪽이 거의 막혔고 다른 쪽도 막힐 수 있어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게다가 워낙 위험한 부위라 수술 도중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했다.
또 혈당이 너무 높아 이걸 먼저 잡아야 수술이 가능하다고 해서 온 가족이 비상에 걸렸다.
나는 엄마를 살리기 위해서는 현미채식을 꼭 드시게 해야 한다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병원 식사를 사식으로 바꾸고 막내가 매일 현미밥과 야채 반찬을 만들어 병원에 가져왔다.
엄마는 지독히도 현미밥을 싫어하셨지만 딸들이 하도 지극정성으로 만들어 오니 억지로 드셨다.
그러면서도 매번 쌀밥에 칼칼한 쌈장과 상추쌈을 먹으면 좋겠다고 푸념하셨다.
천만다행으로 혈당이 안정되었고, 엄마는 딸들의 간절한 바람과 기도에 응답하듯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병원에서는 엄마를 보고 복 받은 할머니라고 불렀다.
그 큰 병원에 우리 육자매가 뜨면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엄마가 조금만 불편해하시면 난리법석을 떨어, 어느새 시끄러운 가족이라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
엄마가 무사히 퇴원하자 우리는 이 모든 공을 막내가 열흘 동안 열심히 해다 드린 현미밥에 돌렸다.
하지만 엄마는 여주 삶은 물을 먹어서 효과가 좋았다고 우겨대셨다.
우리는 현미쌀을 사다 드리며 엄마에게 꼭 현미밥을 해 드실 것을 신신당부했다.
한동안 지난 후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현미밥 대신 보리밥을 해 드신다며 푸념했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왜 현미밥을 안 드시냐고 했더니 까끌까끌해서 도저히 못 먹겠다며, 엄마는 보리밥이 좋으니 이걸 드시겠다고 했다.
억지로 드시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니 속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엄마의 밥상이 가르쳐 준 것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이 좋아하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아 드시고 있었다.
엄마는 현미밥보다 보리밥을 좋아하셨다. 마당에서 직접 키운 상추와 신선한 야채를 곁들이고, 손수 담근 된장으로 된장찌개를 끓여 드셨다.
텃밭에는 고구마를 심어 삶아 드셨고, 몸이 불편한 중에도 밭과 마당을 오가며 늘 부지런히 움직이셨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도 당시의 나는 현미가 몸에 좋다는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다.
엄마에게는 엄마가 오랫동안 먹어 온 음식과 생활방식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보다 책과 방송에서 새롭게 알게 된 건강정보를 더 믿었던 것 같다.
결국 엄마를 모시고 현미자연채식을 하는 생활교육원까지 찾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에게 조금 미안하다.
그때는 엄마가 우리 부탁을 듣지 않고 현미밥을 먹지 않는 것이 정말 속상했다. 건강을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왜 따라 주지 않는지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엄마가 자신의 입맛을 고집했던 것이 엄마에게는 편안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훗날 하게 되었다.
나는 넘쳐나는 건강정보 속에서 현미가 가지고 있다는 여러 장점만 바라보고, 엄마에게도 현미채식을 권하고 있었다.
좋은 음식이 모두에게 같은 음식일까
현미에는 여러 영양소가 들어 있고 통곡물을 포함한 균형 잡힌 식생활이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지금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당시 현미식을 강조하던 의사들과 자연식에 대해 연구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나는 그것을 가장 좋은 식사법 가운데 하나라고 믿었다.
그러나 여러 경험을 거치면서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아무리 몸에 좋다고 알려진 음식이라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건강 상태가 다르고 소화 능력과 생활습관도 다르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어떤 사람은 편안하게 느끼지만 다른 사람은 속이 불편할 수도 있다.
나는 당시 그것을 자동차의 연료에 빗대어 생각하곤 했다.
자동차는 만들어질 때부터 사용하는 연료가 정해져 있다. 아무리 좋은 연료라 하더라도 그 자동차에 맞지 않는 것을 넣으면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사람의 몸을 자동차처럼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당시의 내게 이 비유는 한 가지 중요한 생각을 갖게 했다.
‘좋은 음식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만큼 ‘내 몸은 이 음식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소화가 잘되지 않거나 속이 불편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음식에 관한 정보를 무조건 따라가기보다 내 몸의 변화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몸의 불편함이나 이상 증상이 계속된다면 음식만으로 원인을 판단해서는 안 되고 필요한 검사와 의료진의 진료를 받는 것이 우선이다.
젊은 날의 나는 건강에 좋다는 답 하나를 찾으려고 무척 열심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건강에는 한 가지 음식이나 한 가지 방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요소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 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건넨 것들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전, 나는 당뇨가 있는 엄마를 위해 몇 년 동안 홍삼을 사 드리곤 했다.
기력이 부족한 엄마에게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좋은 마음으로 챙겨 드린 것이었다.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혈압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양파즙을 몇 번이나 엄마에게 보내 드렸다.
우리에게 그것들은 모두 사랑이었다.
엄마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우리 곁에 계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좋은 것을 찾았고, 누군가 몸에 좋다고 하면 엄마에게 먼저 보내 드리고 싶었다.
그때는 ‘몸에 좋다’는 말만 들으면 그것이 엄마에게도 당연히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 마음과 방법을 조금 구분해서 바라보게 된다.
엄마를 사랑했던 마음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좋은 마음으로 선택한 것이라 해도 건강 상태와 복용 중인 약, 개인의 몸 상태에 따라 음식이나 건강식품이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의 우리는 충분히 알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엄마가 좋아했던 밥상은 참 소박했다.
보리밥 한 그릇에 텃밭에서 뜯어 온 상추, 직접 담근 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 그리고 밭에서 캐 온 고구마.
우리는 더 좋은 것을 찾아 멀리 바라보고 있었는데, 엄마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마당과 부엌에서 익숙한 밥상을 차려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이해하는 데 나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이 클수록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을 상대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엄마를 통해 배웠다.
그리고 그 깨달음이 마음에 자리 잡기도 전에, 우리 가족에게 또 한 번의 큰 일이 찾아왔다.
다시 찾아온 위기
그로부터 2년 후 주일 아침,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는데 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지난번 막혔던 같은 자리에 또 혈전이 생겨서 엄마가 쓰러지셨는데,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아노 반주 중이라 울 수도 없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할 수도 없어 어찌할 줄 몰랐다.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앉아 소리 죽여 울었다.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는데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제발 엄마가 다시 깨어나셔서 마지막 시간만이라도 우리와 함께 보내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실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의 정신력은 정말 강하셨다.
중환자실에서 3일간의 금식과 약물치료를 받은 뒤 기적처럼 다시 의식을 회복하셨다.
깨어나더라도 언어장애나 인지기능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다행히 엄마는 다리가 조금 불편하실 뿐 다른 큰 후유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상태도 많이 호전되어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의사선생님들은 엄마가 정말 대단하다고 하셨다.
다리가 조금 불편해 며칠간 물리치료를 받은 엄마를 모시고 우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가장 돌아가고 싶었던 곳
엄마는 병원에 계신 것이 많이 갑갑하셨던 모양이다.
시골집에 돌아오시자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엄마가 다시 두 발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시는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도 엄마가 다시 깨어나 우리 곁으로 돌아오신 것이 그저 감사하고 기뻤다.
하지만 기쁨과 함께 걱정도 커졌다.
혼자 시골집에 계시다가 또다시 아프시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엄마가 재활병원에서 조금 더 머물면서 충분히 치료를 받으셨으면 했다.
그러나 엄마는 병원에 더 있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엄마에게는 병원의 좋은 시설보다 자신의 시골집이 더 편안했던 것이다.
다리가 불편한 엄마를 혼자 시골집에 계시게 하고 부산으로 내려오는 길, 마음이 너무 무겁고 힘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부산으로 모셔 오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는 절대로 시골집을 떠나려고 하지 않으셨다.
결국 우리 자매는 교대로 순번을 정해 엄마에게 가기로 했다.
누군가는 엄마의 밥을 챙기고, 누군가는 병원에 모시고 가고, 또 누군가는 엄마 곁에서 하루를 함께 보내기로 했다.
여섯 딸이 멀리 흩어져 살고 있었지만 엄마가 아프실 때만큼은 다시 한마음이 되었다.
아마 당분간은 다 같이 모여 마당에 숯불을 피워 놓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시끌벅적 떠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 한쪽이 허전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연했던 풍경이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 있었다.
장미 울타리가 예쁜 시골집에 제비들만 날아다니며 엄마 곁을 지키고 있었다.
작가 노트 | 좋은 음식보다 내게 맞는 음식
웰빙이라는 말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 나는 건강에 좋다는 것을 찾아 참 열심히 공부했다.
책을 읽고 방송을 찾아보며 누군가에게 좋았다는 식사법을 알게 되면 나도 따라 해 보았다. 내가 경험해 보고 좋다고 생각한 것은 가족에게도 권했다.
그 모든 행동의 시작에는 건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엄마에게 무엇이든 좋은 것을 해 드리고 싶다는 딸들의 사랑이 있었다.
현미채식도 그중 하나였다.
당시 나는 현미가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그것이 엄마에게도 당연히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현미밥을 싫어하면 건강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했고, 보리밥을 고집하시면 왜 좋은 것을 두고 굳이 다른 것을 드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엄마는 평생 자신이 먹어 온 음식을 알고 있었다.
보리밥을 좋아했고, 마당에서 뜯은 상추와 채소를 즐겨 드셨으며, 직접 담근 된장으로 찌개를 끓였다. 밭에서 고구마를 키우고 몸이 허락하는 날에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우리는 새로운 건강정보를 찾아 엄마에게 가져갔지만, 엄마에게는 이미 평생 이어 온 자신의 밥상이 있었다.
물론 이것이 보리밥이나 특정 음식이 질병을 치료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당시 내가 경험했던 현미채식이나 자연식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할 수도 없다.
특히 당뇨나 고혈압, 뇌혈관질환처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질환은 음식만으로 판단하거나 치료해서는 안 되며 의료진의 진료와 적절한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만 그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음식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권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이와 건강 상태, 복용하는 약, 생활습관과 소화 상태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을 걱정할 때에는 내가 알고 있는 방법을 먼저 권하기보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편안해하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에게 현미밥을 먹이려고 애쓰던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조금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웃음이 난다.
엄마는 딸들의 성화에 마지못해 현미밥을 드시면서도 끝까지 “나는 보리밥이 좋다”고 하셨다.
그리고 결국 다시 자신의 밥상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좋은 음식을 찾아 책 속을 헤매고 있었지만, 엄마는 평생 살아온 부엌과 텃밭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밥을 먹고 있었다.
이제는 건강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만날 때 예전처럼 쉽게 하나의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다는 말을 무조건 믿기보다 근거를 살펴보고, 필요한 경우 의료진과 상의하며,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차분히 바라보려고 한다.
엄마와 함께 지나온 그 시간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어떤 특별한 식사법이 아니었다.
사람의 몸도, 사람의 삶도 모두 다르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건네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삶과 선택을 함께 존중하는 일이라는 것도 조금 늦게 배웠다.
한 줄의 기억
나는 엄마에게 좋은 음식을 찾아드리려 했고, 세월이 흐른 뒤에야 엄마에게는 이미 평생 살아온 자신의 밥상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