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원에서 만난 밥 따로 물 따로
다이어트가 숙명이 되다
현미채식을 하는데도 살은 더 이상 빠지지 않았다.
10년 동안 45㎏을 넘어 본 적이 없던 내가 통통하다 못해 이제는 목숨 걸고 다이어트를 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고 느낄 정도였다.
한때는 어떻게 하면 살을 찌울까 고민했는데, 이제는 살이 너무 쪄서 원피스를 입어도 몸의 선이 올록볼록 드러나 태가 나지 않았다. 입던 옷들도 죄다 꽉 끼어 한 치수 큰 옷을 새로 사야 했다.
어느 날부터는 많이 먹지 않는데도 먹는 것이 다 살로 가는 느낌이었고, 얼굴에는 때아닌 여드름이 극성을 부렸다.
갑자기 다이어트가 숙명처럼 여겨졌다.
나는 또 도서관과 서점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다이어트에 관한 여러 책을 읽으며 당시의 나는 단식을 통해 몸을 비우면 다시 정상적인 체중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여름방학을 이용해 경기도에 있는 자연 단식원에 일주일 동안 입소했다.
그곳은 단식만 하는 곳은 아니었다. 매일 수목원을 산책하며 걷기와 요가 프로그램을 함께 했다.
첫날 입소한 뒤 며칠 동안은 생수만 마셨다.
같은 방에 배정된 분은 저녁마다 TV의 먹는 방송을 계속 틀어 놓았다. 친구와 오랫동안 통화하면서 단식이 끝나면 무엇을 먹을 것인지 이야기하곤 했다.
좁은 방에서 둘이 함께 지내야 했던 나는 그 시간이 꽤 힘들었다.
수목원에 가서도 자유시간이 되면 몰래 무언가를 사 먹는 데 함께하기를 바랐고, 나중에는 같이 어울리는 것조차 피곤해졌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마음도 이해가 간다.
사람에게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데 생수만 마시며 하루를 보내야 했으니,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돈만 내면 언제든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환경에서 물만 마시며 몇 시간씩 걷는 일이 고역이었다.
3일째부터는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 가지고 있던 야채효소를 생수에 타서 마시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효소를 섞어 마시는 단식이 물만 마시는 것보다 몸에 부담이 적고 견디기 쉽다고 생각했다.
단식원에서 만난 한 권의 책
단식원에서는 거의 매일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났다.
특히 체중이 많이 나가는 입소자들 가운데 배고픔이나 어지럼증을 견디지 못해 응급실에 실려 가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일주일 프로그램으로 들어갔지만 3주나 한 달씩 머무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시설이 좋은 단식원이었지만 문득 하루 비용을 계산해 보며 ‘물만 마시는데 이렇게 비용이 드는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저녁 7시가 되면 원장님은 퇴근했고 단식원에는 입소자들만 남아 적막해졌다.
같은 방을 쓰던 사람이 잠들 때까지 먹는 방송을 틀어 놓는 바람에 딱히 할 일이 없던 나는 요가실에 놓여 있던 몇 권 안 되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밥 따로 물 따로》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책은 음양의 원리를 바탕으로 식사 중이나 식사 전후에 물을 마시는 습관을 줄이고, 밥과 물의 시간을 나누는 식사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당시의 내게 그 내용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별도의 약이나 특별한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고 일상의 식사 습관만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니 나도 한번 해 보고 싶었다.
퇴소하려면 이틀이 남아 있어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매일 먹는 이야기만 오가는 단식원의 분위기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원장님에게 퇴소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서울로 가는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 달라고 부탁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첫 번째 ‘밥 따로 물 따로’ 식사를 했다.
밥과 마른 반찬, 찌개의 건더기만 먹었다. 물은 두 시간 뒤에 마셔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갈증을 참는 일이 조금 힘들었다.
서울에 도착해서야 물을 마시고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단식원에서 지낸 닷새 동안 몸무게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몸의 부기가 빠진 듯 옷이 한결 편해졌고 살찌기 전에 입던 옷들도 다시 입을 수 있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생각하며 본격적으로 ‘밥 따로 물 따로’ 식사를 해 보기로 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다시 듣다
처음 며칠 동안은 체한 듯 목에 이물감이 느껴져 힘들었다.
그러나 아침을 거르고 점심과 저녁을 먹으며 식사 전후 일정 시간 동안 물을 마시지 않는 방식에 차츰 익숙해졌다.
책에서 기대했던 것처럼 살이 많이 빠지지는 않았다.
대신 당시의 나는 변비가 줄고 배변 상태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몸의 컨디션도 전보다 좋아진 것 같았다.
아들도 평소 식사 후 곧바로 화장실에 가는 일이 잦았는데, 이 식사법을 함께 해 보면서 그런 증상이 줄었다고 느꼈다.
그때의 나는 화장실을 편하게 가는 데 이 방법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불편함이 생겼다.
어느 날부터인가 이 식사법을 하면 속이 너무 쓰렸다.
국물 없이 마른 반찬만 먹는 것도 점점 힘들어졌다.
결국 오랫동안 지속할 수는 없었다.
젊은 날의 나는 건강에 좋다는 새로운 방법을 만나면 직접 해 보고 싶어 했다.
현미채식도 그랬고 단식도 그랬으며, ‘밥 따로 물 따로’ 식사법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몸이 좋아지는 듯한 작은 변화를 만나면 그 방법 안에 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어떤 식사법이 한때 내게 편안하게 느껴졌다고 해서 그것이 오래도록 맞는 방법이라는 뜻은 아니며,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결과를 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몸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그때 몸이 보내는 신호를 다시 살피는 일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했다.
작가 노트 | 답을 찾아 헤매던 시간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몸이 조금만 불편해져도 그 원인과 해답을 찾아 몹시 바쁘게 움직였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새로운 건강법을 알게 되면 직접 실천해 보았다. 현미채식을 하다가 단식원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또 다른 식사법을 만나면 그것을 새로운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다.
몸무게 몇 킬로그램이 늘어나는 것도 당시의 나에게는 큰 변화였다. 오랫동안 익숙했던 몸이 달라지고 옷이 맞지 않자 몸 전체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몸을 이해하기보다 몸을 빨리 예전 모습으로 돌려놓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체중은 숫자 하나만으로 건강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나이와 생활습관, 수면, 스트레스, 호르몬 변화, 질환과 약물 등 여러 가지 요소가 함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장기간의 단식이나 수분 섭취를 제한하는 식사법은 누구에게나 안전한 방법이 아니며, 특히 당뇨나 신장질환을 비롯한 질환이 있거나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의료진과 상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시간을 후회하지만은 않는다.
여러 방법을 찾아 헤매는 동안 내 몸이 무엇을 편안해하고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살을 빼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배우게 된 것은 체중을 줄이는 방법보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일이었다.
좋다는 방법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고집하기보다, 몸이 불편하다고 말하면 멈추고 다시 생각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내가 오랜 시간 건강을 찾아 헤매며 얻은 가장 현실적인 배움인지도 모른다.
한 줄의 기억
나는 살을 빼기 위해 답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몸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불편하다는 신호를 먼저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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